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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피두 후의 프랑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프랑스의 영광과 『위대한 프랑스』의 상징이던 샤를·드골 전 대통령이 퇴장한 지 5년만에, 골리즘의 정통을 계승한 조르지·퐁피두 대통령도 임기 만료 2년을 앞두고 영면했다.
퐁피두 대통령의 급서는 프랑스 제 5공화국의 기본적인 성격을 이루어 오던 거인의 치세에 일단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는 상징이 될 수도 있다.
한때 전후의 황폐와 정치적 불안정으로 시달려 오던 프랑스는 드골이라는 거인이 갖는 카리스마와 그 상속자의 탁월한 지도력이 기둥이 된 정치 체제하에서 상대적인 안정기를 맞이할 수 있었으나, 이제 또다시 닥쳐온 영웅 부재 시대의 정치적 혼잡을 좀처럼 면하기는 어렵게 된 셈이다. 메스메르 수상이 스스로 실토하고 있듯이 앞으로의 『정치적 암흑시대』를 헤쳐 나가는데 있어 프랑스가 직면하게 될 정치적·경제적·외교적 난제들은 이미 퐁피두 대통령 사망 직후부터 급속히 현재화되고 있었다.
석유파동 이후 치솟고 있는 인플레와 거듭되는 노사 분규를 비롯, 학제 개편안을 둘러싼 학생들의 가두 진출은 드골·퐁피두 이래의 권위주의적인 골리즘에 대한 현대 프랑스 국민들의 근본적인 거부 반응을 표출한 것으로 풀이되었다.
대외적으로는 아랍 산유국과의 직접거래 방식이 빚어낸 키신저 석유 전략과의 충돌, 프랑스 독자 핵군 창설안이 가져온 과중한 재정 부담, 세계 제3의 대국을 의식한 독자적 대소·대중공 접근 때문에 지불해야 했던 서방 진영과의 마찰 등이 프랑스의 영광보다는 오히려 프랑스 외교의 고립을 초래하지나 않았나 하는 위구심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 점은 최근 EC 가맹 조건을 수정하자는 영국 노동당 정권과의 노골적인 격돌로 더욱 첨예하게 노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프랑스의 위기는 골리즘의 해체에 못지 않게, 골리즘 후에 아무런 새로운 비전이 뚜렷하게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싹튼 것이다. 드골파인 민주 공화 연합은 드골과 퐁피두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세력인 만큼, 샤방-델마스나 지스카르-데스텡과 같은 재사 또는 관리자 스타일의 인물만으로써는 위기 시대의 대통령으로서의 탁월한 영도력을 국민들에게 약속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반면 사회당과 공산당의 연합전선이 내세울지도 모를 프랑솨·미테랑 후보는 제아무리 광범위한 사회 개혁을 공약하고 있다 하더라도 서구 문화의 중심임을 자처하는 프랑스 국민의 자유주의·보수주의적 체질에 전폭적으로 수용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 밖의 중도파 인물들, 가령 세르방·슈레베르 급진당수나 에드가·포르 전 수상 등도 서독 사민당 정도의 통합된 중도좌파 내지 중도우파 정당으로 뭉치지 못하는 이상, 집권의 가능성은 기약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결국 프랑스는 다시금 정치 지도력의 다원화와 분산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수주일 후에 다가올 대통령 선거에서는 아마도 결선 투표라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샤방-델마스와 미테랑이 『본래의 프랑스』냐, 『좌경한 프랑스냐』를 결판 짓자고 유권자들에게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에 있어 보다 기본적인 것은 정치 이데올로기나 정당 지도자라기보다는 그 난숙한 문화의 에스프리와 시민 정신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공황의 시대를 뚫고 나갈 탁월한 정치 집단의 결핍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전도는 반드시 비관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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