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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출입제한 구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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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의 도심과 변두리에 산재해 있는 유흥가·환락가·사창가 등 34개 지역에 대해서「미성년자 출입제한구역」을 설정키로 했다는 것이다. 최근 부쩍 는 청소년범죄를 미리 막아 보려는 경찰의 고심이 이 같은 고육지책을 마련케 한 것 같다.
우리가 이미 여러 차례 강조해 둔 바와 같이 미성년자의 보호 및 예방은 전 성인사회가 다같이 져야 할 책임에 속하며, 더욱 중요한 것은 전 성인사회가 다같이 이 책임을 짐으로써만 비로소 그 실효를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의 다른 계층이나 영역에서는 여전히 청소년을 범죄로 유인할 수 있는 독소를 번무하게 그대로 방치해 두고, 단지 미성년자의 눈에만 띄지 않도록 경찰로 하여금 그 뚜껑이나 덮어두도록 해서 청소년들의 선도가 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결과부터 미리 예단해 본다면 4월부터 과연「미성년자출입제한구역」이 설정되고 그 구역마다 안내표지판과 경찰관 이동초소가 마련되었을 경우, 그것은 오히려 이 같은 금지구역을 미성년자의 눈에 더욱 돋보이도록 적선으로「언덜라인」(강조)하는 역효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지금까지는 그곳을 무심코 지나쳤던 어린이들에게까지 그곳이 무엇 하는 곳인지를 불필요하게「계몽」하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
이 같은 출입제한구역을 설정함으로 해서 같은 푸른 하늘을 지붕 삼는 서울의 백주 도심에 미성년자는 접근할 수도 없는 악의 세계가 공공연하게 합법적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어린 의식에 가시적으로 인식 시켜 줄 필요가 있는 것일까.
일제시대에서 자라난 성인세대의 일부는 이른바「유곽」의 존재를 바로 그것이 출입제한구역이었다는 사실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됐던 어린 시절의 충격과 우울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원칙적으로 우리는 하나의 사회를 몇 개의「컴파트먼트」로 구역화 하는데 반대한다. 개방되고 명랑해야 할 민주사회가 아무개는 출입할 수 있고 아무개는 출입 못하는 구역으로 나눠진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울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매스컴」을 통해서 결국은 모든 것이 가시화 되고 도시생활의 증폭되는 상호행위를 통해서 끝내는 모든 것이 노현 되게 마련인 현대에 있어 출입제한구역 설정의 교육적 의미는 금방 풍화되어 버릴 것이 정한 이치다.
중요한 것은 모든 구역에 있어서의 성인들의 일상적인 몸가짐·마음가짐이요, 청소년들을 진실로 알뜰히 보살펴 줄줄 아는 사회기풍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특히 중요한 것이 부유층·특권층인사들의 평소의 행태라는 것도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전통적인 신분이나 연장자의 비위가 무너져 버린 도덕적 공백 속에서 스스로의 지위를 정상화하는 아무런 이념적 설득도 없이 오로지 화려한 소비「패턴」을 시위하려 드는 부유층·특권층의 행각이야말로 어떠한「출입제한구역」따위로써도 막을 수 없는 청소년 오도의 병폐가 되고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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