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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애들은 라면 먹고 게임·게임 … 일 나온 엄마는 안절부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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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경기도 평택시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 정우진(12·가명)군의 하루는 오전 9시 컴퓨터를 켜는 것으로 시작된다. 맞벌이를 하는 어머니가 오후 6시 퇴근할 때까지 메이플 스토리 등 주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한 살 터울인 형, 동생이 함께 있지만 이들도 하루 종일 컴퓨터 게임과 TV를 보면서 지내기는 마찬가지다. 삼형제는 점심을 라면으로 때우기 일쑤다. 매 끼니를 부실하게 먹고 있다. 우진군 어머니 김모(41)씨는 “학교 돌봄교실에 보내고 싶었지만 소득이 높다는 이유로 떨어졌다.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우진이네 집 소득은 한 달에 450만원 정도다. 차상위계층(4인 가족 기준 185만원)보다 높다. 하지만 이 중 350만원을 아버지의 허리 수술비와 월세 등으로 지출한다. 100만원 남짓으로 다섯 식구가 생활해야 한다. 초등학생인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필요한데도 김씨가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다. 이 때문에 이번 방학 직전 돌봄교실에 들어갈 방법을 학교와 구청을 통해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차상위계층이 아니라 어렵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김씨는 “1인당 15만원씩 하는 학원은 부담이 된다”며 “그렇다고 한두 시간 돌봐주는 방과후 학교에 보내느니 아예 아무것도 안 시키는 게 낫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최근 맞벌이 부부를 위해 돌봄교실을 확대하고 있지만 나홀로 아동 대부분은 방학 중 이를 이용하지 못하고 여전히 방치돼 있다. 돌봄교실 수용인원이 턱없이 부족하고 저소득층에 제한되는 등 신청 기준도 까다롭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전체 초등학생 328만 명 중 3.7%인 12만2351명(2011년 기준)이 1주일에 5일 이상, 하루 5시간 이상을 보호자 없이 홀로 지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지난해 10월 저소득층 위주로 제한했던 돌봄교실을 올해부터 초등 1~2학년 희망자 전원으로 확대키로 했다. 45만4000여 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번 방학은 예외다. 해당 대책이 오는 3월부터 실시되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의 5499개교(7857학급)에서 12만7000여 명이 이용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이달 현재 운영 중인 초등학생 돌봄교실은 516개교 671곳에 불과하다. 한 학교당 1.3개 수준이다. 전체 학생 47만3256명(2013년 기준) 중 1만1876명(2.5%)만 혜택을 받는다.

 함께 지낼 형제마저 없는 아이들은 길거리를 배회하거나 하루 종일 집에 혼자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초등학교 2학년 김모(8)군은 어머니가 회사에서 돌아오는 오후 8시까지 하루 종일 혼자 집에서 레고 놀이를 하고 지낸다. 한부모 가정이다 보니 김군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져야 해서다. 관악구에 사는 초등학교 3학년 백모(9)양은 어머니가 오전 7시 출근하고 나면 반나절을 홀로 있는다. 오후 2시 미술학원을 갈 때까지 TV를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한다. 백양은 “아침과 점심을 엄마가 차려놓지만 꺼내먹기 귀찮아 잘 안 먹는다”고 했다.

 형편이 좀 나은 집은 ‘학원 뺑뺑이’를 돈다.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만난 이 학교 3학년 채모(9)양은 하루에 영어·태권도·피아노·플루트 등 학원을 4개씩 다닌다. 어머니가 퇴근하는 오후 6시에 맞춰 귀가하도록 시간표를 짰다. 채양은 “점심은 밖에서 사먹으라고 엄마가 카드를 줬다”며 신용카드를 보여줬다. 같은 학교 현모(10)군도 “엄마, 아빠가 올 때까지 영어·태권도 학원에서 지낸다”고 말했다.

 집에 홀로 방치된 아이들은 대개 컴퓨터 게임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경기도 한 초등학교 6학년 A군(12)은 게임 중독으로 현실과 게임 속을 구분하지 못해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방학 때 하루 종일 혼자 지내는 A군을 위해 아버지가 게임기를 사준 게 화근이었다.

  최석현 좋은마음센터평택지부장은 “우리나라 부모들 가운데 일부는 ‘나도 어릴 때 혼자 자랐다’는 인식 때문에 아동 방임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서 “소외감이 지속되면 우울증에 걸리거나 길거리를 배회하다 탈선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글=이유정·석혜원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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