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기념관, 오바마 위안부법 서명 … 박근혜 외교 성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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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3일 7박9일간의 해외 순방을 마친 뒤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박 대통령 왼쪽은 김기춘 비서실장, 오른쪽은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변선구 기자]

요즘 청와대 참모들의 표정이 환하다. 외교안보 라인뿐 아니라 정무 라인 인사들을 만나도 “지난 한 해 박근혜 대통령이 다져왔던 정상외교가 하나씩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한 핵심 관계자는 “지난해 한 해 동안 씨를 뿌려놓고 가슴 졸이면서 기다려 왔던 일들이 구체적으로 가시화되고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실제 여러 가지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가장 최근의 희소식은 중국에서 날아왔다. 하얼빈(哈爾濱)역에 개관(19일)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신호탄이었다. 기념관 건립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기대난망으로 여겨졌다. 중국이 일본과의 관계 때문에 기념관 건립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스위스 순방 중 이 소식을 들은 박 대통령도 크게 흡족해했다는 후문이다.

 이 문제가 풀리게 된 계기는 지난해 6월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오찬에서 “안 의사가 한·중 양 국민들이 공히 존경하는 인물인 만큼 하얼빈역의 의거 현장에 기념 표지석을 설치하는 것에 협조해달라”고 요청했고, 시 주석이 “잘 검토토록 지시하겠다”고 답했다. 이후 7개월여 만에 중국이 표지석을 뛰어넘어 기념관 개관을 허용했다.

 중국은 22일 충칭(重慶)의 광복군 총사령부 건물도 복원키로 결정해 박 대통령이 방중 당시 시안(西安) 산시성(陝西省) 당서기와의 면담 때 요청한 ‘광복군 유적지 표지석 설치 사업’도 조만간 결실을 맺을 만큼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고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17일 일본 정부에 ‘위안부 결의안’ 준수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법안에 서명한 것도 정상급 외교의 성과물로 꼽힌다. 일본 입장에선 자국의 최우방인 미국이 역사 문제에 한국 손을 들어준 셈이어서 상당한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3일 “지난달 초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방한해 박 대통령을 만났을 때 위안부 문제를 끈질기게 설득한 것이 미국 정가에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워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정상외교가 알게 모르게 작용한 게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 확대 결정이다.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국익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KADIZ 설정은 자칫 미·중·일 등 주변국과 큰 마찰을 빚을 수 있는 사안이었지만 안팎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혼란 없이 매듭지어졌다. 박 대통령은 지난 10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방공식별구역 선포로 인해 동북아의 긴장이 조성됐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간 중국과 발전시켜온 신뢰가 있었고, 미국·일본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올해부터 러시아와 비자면제 협정이 발효된 것도 정상외교의 성과로 꼽힌다. 이명박정부 때 다소 소원해졌던 한·러관계는 박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한에 맞춰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미리 내놓으면서 거리감이 좁혀졌다. 이번 인도 국빈방문에선 9년간 지지부진하던 포스코의 인도 오리사주 제철소 건설 프로젝트 문제가 해결됐다. 스위스에선 국내 마이스터고 졸업자들의 유학길이 열리는 성과를 거뒀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구석구석에서 지난해 박 대통령의 정상외교가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며 “다만 한·일관계에 있어 일본의 몰지각한 행보에는 강하게 나가야 하지만 한·중·일 삼각협력이 약해지면 중국이 한국을 바라보는 전략적 필요성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 새해 첫 해외순방 마치고 귀국=박 대통령은 7박9일간의 인도·스위스 국빈방문을 마치고 23일 귀국했다. 박 대통령은 새해 첫 해외순방에서 국내 기업의 해외진출을 돕고,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잇따라 접견했으며, 22일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다보스포럼)에선 창조경제와 남북통일의 중요성에 대해 연설했다.

글=신용호·허진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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