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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학과에의 집중현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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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문교부의 대학교육 개선방안에 따라 지난해부터 처음으로 신입생의 계열별 모집을 『실험한』 몇몇 사립대학들이 올해 2학년 진급과 동시에 실시한 전공학과 배치 결과는 당초 예상을 비웃듯이 여전히 인기학과 집중현상을 드러내 이 제도운영의 전도를 암담케 하고있다.
이들 실험대학 학생의 전공학과 지망상황과 학교측의 배치결과를 보면, 예컨대 전자공학과·경제학과·법학과 등 소위 인기학과들에 대한 집중지원 경향이 정원을 훨씬 초과하는 사태를 빚어 희망대로의 배치에 큰 곤란을 느끼게 한 반면, 그 밖의 순수학 문제 등, 세칭 사양학과의 경우는 지망자가 거의 없어 심한 정원미달 사태를 빚었다. 뿐만 아니라 그 결과로 지망학과에 배치되지 못한 일부 학생들은 스스로 배정을 포기하고 휴학이나 전학을 꾀하고 있다는 심각한 사태까지 전해지고 있다. 물론, 계열별 학생모집은 이제 그 실험이 시작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애초에 대학교육제도의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개혁방안으로서 제시됐던 이 제도가 벌써부터 학과배치과정에서 근본적인 장벽에 부딪쳤다는 사실은 실사회의 현실적인 여건을 충분히 고려함이 없이 너무 이상에만 흐른 교육제도 개선을 시도한데서 오는 당연한 귀결이었다고 봄이 옳을 것이다.
계열별 모집방식의 근본취지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맹목적인 인기학과 집중지원 성향을 배제하고, 평균적 수준의 학생들을 일단 계열별로 입학시켜 후일 학생 개개인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전공과목을 이수케 한다는 것이었다. 일견 그것은 학과별 학생들의 격차를 줄이고 좀더 합리적인 학과선택을 가능케 할 것처럼 보였다.
아닌게 아니라 전후 4반세기 동안 우리 나라 교육은 세칭 1유교와 인기학과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과열적 경쟁심 때문에 대학교육의 영역에 있어서도 학문분야별 또는 교수·학생의 능력간에 심한 불균형을 초래했음은 물론, 이로 말미암아 면학기풍의 혼탁과 속화를 초래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모처럼 기대했던 계열별 학생모집의 실험효과가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병폐를 고작 1년간 유예시킨 데 불과한 것이라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지금까지 교육제도개편논의가 매양 이상과 현실, 제도와 사회적 토대와의 심한 괴리를 제대로 투시하지 못한 채 자칫 조령모개를 일삼아온 데 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현실 사회에서는 아직도 특정학과 졸업생들만이 취업이 잘되고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는 객관적 여건이 엄존하여 이것이 모든 사람들 머리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나와야만 입신양명과 부귀영달의 길을 들 수 있다는 식의 봉건적·관료적 직업관이 인습적으로 현존할 뿐 아니라, 어떤 직종을 메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특정학과 출신이어야만 한다는 식의 고정관념이 엄연한 관행으로 지켜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같은 관행이 폐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아무리 이상적인 교육제도가 채택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십중팔구 실사회로부터의 거부반응을 뚫지 못하고 말 공산이 짙은 것이다.
때문에, 새 개혁안이 실효를 거두려면 무엇보다도 사회여건 자체의 성숙, 즉 근대적인 직업평등관의 실현을 기다리는 신중성을 기해야 함은 물론, 학제상으로도 광범한 부전공제의 인정 등 보완조치를 통해 대학의 학과별 폐쇄성을 타파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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