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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 되찾은 미국의 주도권|워싱턴 석유 소비국회의 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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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달러」불안과 지역주의의 팽배로 60년대 후반부터 크게 흔들렸던 미극의 서방 세계에 대한 「헤게모니」는 이번의 석유 소비국 회의를 통해 안정을 되찾았다.
통화·무역분쟁에서 경쟁적인 자세를 가다듬어 오던 EC(구주공동체)와 일본이, 「프랑스」를 빼고는 모두 「키신저」 구상에 동의한 것이다.
이것은 중공이나「프랑스」가 말하는 이른바 『미·소의 세계 공동관리체제』가 한층 더 굳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번 사태를 단순히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대역전극」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지난 수년간 서방 세계경제를 뒤흔들었던 금 파동이나 「달러」화의 급격한 위신 실추는 EC와 일본의 도전에서 비롯됐던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일어났던 갖가지의 분쟁, 예컨데 주가조정 문제나 수출입의 규제문제 등에서 EC와 일본의 대미 이해관계는 늘 일치해왔다.
그러나 수년에 걸쳐 다져졌던 이와 같은 공동 전열이 석유문제를 계기로 완전히 깨어져버린 셈이다.
말하자면 『위대한 「유럽」』 내지 『미국의 경쟁자 일본』이라는 달콤한 꿈은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것은 필연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현존하는 2개의 초강대국이 서로 자기「블록」에서의 지도권 확립을 바라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71년 「닉슨」이 「달러」의 금태환 정지를 결정한 후 미·소·중공·일·EC의 「5강 체제」를 말한 적이 있지만 이것은 「닉슨」자신도 밝혔듯이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구상이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군사적 2극 체제와 정치적 3극 체제가 위에 말한 5강 협조구상의 대전제였던 것이다.
미국 「헤게모니」 복권은 일본과 EC각국이 갖고있는 자원면에서의 취약점 때문에 더욱 촉진되었다.
「드골」노선의 지침에 마라 미국과의 정면대결을 감행한 「프랑스」의 경우 이와 같은 사실이 한결 두드러졌다.
독자적인 원유외교로 무기-원유의 대형「바터」에 일단은 성공했지만 이번의 성공은 희소가치 때문에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많은 「업저버」들이 지적했듯이 일본이나 미국·서독이 「아랍」세계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무기수출이나 정유시설 및 기술의 수출면에서 「프랑스」는 이들과는 경쟁상대가 못되는 것이다.
「부원빈국」일본의 입장은 「프랑스」보다도 더욱 나쁘다. 일본 정부가 산유국과 미국간을 시계추처럼 왕복하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어쨌든 일본은「메이저·그룹」의 원유공급 중단 위협만으로도 심리적인 「패닉」을 느낄 정도인 만큼 이번 소비국 회의에서 「키신저」의 강단대로 춤 춘 것은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달러」화의 불안에 가장 큰 타격을 줬던 서독이 「워싱턴」회의에서 「프랑스」와 직접 충돌한 것은 EC의 대미 편향을 결정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깊은 의미를 가진다.
그 이유가 두 번에 걸친 패전 경험 때문이든, 아니면 「프랑스」의 경제적 「에고이즘」에 대한 반발 때문이든 간에 서독의 대미 편향은 EC지역주의의 첫 조종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미국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에너지」위기의 격랑 속에서 서방세계의 패권을 회복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 회복이 한마당의 회의에서 결정된 이유는 격랑의 파고가 사활에 관계될 정도로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다소 작위적인 냄새를 풍기는 원유 파동 속에서 이뤄졌다는 점에 잇다. 말하자면 미국은 통화 분쟁이나 무역분쟁 등 「헤게모니」의 기반을 흔들었던 애초의 문젯점을 해결하는 대신 자신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안될 「제3의 난제」를 던져놓음으로써 잠정적인 해결을 본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서 얻은 성과를 징검다리로 삼아 통화·무역분쟁을 불러오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것이 미국의 속셈이라고 단정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책략이 제대로 맞아떨어진다 하더라도 2차대전 직후의 위광을 되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우선 통화 문제만하더라도 금·「달러」화의 등식시대가 되돌아올 가능성은 없는 것이다. SDR(특별 인출권)의 보완적 지위가 더욱 강화되어 금·「달러」·SDR의 정립이 이뤄질 것이라는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그리고 무역문제에서도『미국의 독자적인 정책보다는 산유국의 「오일·달러」 처리방향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
어쨌든 추락을 거듭하던 미국의 지위는 석유소비국회의 일전으로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보아야한다. 그리고 그 부산물로 미·소의 세계 지배체제는 더욱 굳어진 것이다.【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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