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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기의 꿈 뚝딱뚝딱 노숙인 기업 "이번 설엔 가족들 선물 부쳐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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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목공예 업체 ‘늘품공방’을 세운 세공기술자 임정만씨(왼쪽 둘째)와 노숙인 출신 직원들이 불교문화상품 공모전에 낼 작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몇 년간 오갈 데 없었던 노숙인 신세. 하지만 올 설은 유달리 기다려진다고 했다. 일해 번 돈으로 집에 자그마한 선물이나마 보낼 수 있게 돼서다. 그런 꿈은 동대구노숙인쉼터 지하 1층에 있는 ‘늘품공방’에서 무르익고 있다.

 나무 필통이나 나무 연필꽂이 같은 목공예 제품 10여 가지를 만드는 늘품공방은 지난해 8월 처음 문을 열었다. 동대구노숙인쉼터에서 가끔 봉사활동을 하던 세공기술자 임정만(54)씨가 쉼터 측에 “노숙인들을 먹이고 재워 주기만 할 게 아니라 일자리를 주자”고 제안한 게 계기였다. 20명의 노숙인을 모아 쉼터 지하 1층에 회사를 차렸다. 대구시는 지원금 1억원을 내놨다.

 목공예기술을 가르치는 일부터 시작했다. 처음엔 순탄치 않았다고들 했다. 감독하는 눈을 소홀히 하면 바로 불량품이 나왔다. 임씨는 “초기엔 대략 10개 중 4개가 불량이었다”고 했다. 툭 하면 주먹다짐이 일어나고, 근무시간에 사라져 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물건이 팔릴 리 만무했다. 벌이가 없어 대구시 지원금에서 얼마간씩 떼어 ‘월급’이라며 나눠 가졌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더 이상 월급을 주면 운영에 문제가 생길 상황에 닥쳤다. 그렇잖아도 일하기 싫다며 하나 둘 떠나더니 결국엔 임씨와 4명만 남았다.

 남은 직원은 “월급이 없더라도 가는 데까지 가 보자”며 의기투합했다. 새로운 제품을 구상했다. ‘독도’를 주제로 한 목공예 제품이었다. 독도 관련 학술대회 같은 것을 하면서 막상 기념품은 중국산을 나눠 준다는 사실을 알고 낸 아이디어였다.

 뚜껑을 열면 애국가가 나오는 소형 장식함(오르골), 독도 지도가 그려진 필통 등을 만들었다. 제품소개서를 보내자 독도 관련 사업을 하는 안용복재단 등에서 주문이 들어왔다. 지난해 12월의 일이었다.

 두 달이 채 못 되는 사이 400만원어치를 팔았다. 수익이 약간 생겨 25일께 1인당 40만원씩 ‘설 보너스’를 나눠 갖기로 했다. 공방 직원 김모(48)씨는 “아직은 버리고 나왔던 가족 볼 용기가 없어 보너스로 선물만 사서 보내려 한다”며 “자리가 잡히면 가족에게 달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 영천에 가족이 있다는 그는 일용직 생활을 하다 일자리가 없어 2011년부터 노숙을 했다.

 늘품공방 직원들은 “월급이 제때 나올 정도가 되면 일부를 떼어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겠다”고 입을 모았다.

대구=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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