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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나그네 김찬삼씨 아마존 비경 탐험 (9)|괌도 (3)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괌」섬은 남북이 약 48km 동서가 7∼15km로서 가운데가 잘록하게 되어 있어 흡사 첼로나 조롱박과도 같은 모양이다. 가까이 따로 떨어져 있던 두개의 화산도가 달라붙게 된 때문이라고 한다. 태평양의 다른 여러 조그마한 섬들도 조감도하면 그 형상이 미술적이 아닌 것이 없지만, 이 섬은 미인의 육체와도 같은 곡선미가 있다.

<마젤란 백색비가 우뚝>
이 섬의 서남쪽에 우마탁 (Umatac)이란 만이 있는데 여기엔 1521년 저 유명한 항해가 마젤란이 상륙한 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높이 약 4m의 네모꼴 백색비가 있다.
이곳을 찾으면서 다시 한번 마젤란의 탐험 정신이 얼마나 훌륭한가를 느꼈다. 그는 남을 정복하는 죄를 저지르긴 했지만 얼마나 많은 곳을 개척했던가. 이 자그마한 섬을 두루 다니면서 그 옛날 마젤란이 범선을 타고 이곳까지 와서 닻을 내리고 여기 저기를 조사했을 모습을 그려보았다.
약 5세기 전에 분명히 이곳에 마젤란이 그의 부하들을 데리고 왔었지만 그와 말을 주고받을 아무런 회고적인 자취도 남겨져 있지 않는 것이 안타까 왔다. 내가 왜 마젤란 때 태어나지 못했는가 아쉬울 뿐이다. 이 만의 언덕 위에는 돌로 만든 초소가 있는데 그것은 옛날 태평양을 휩쓸던 해적선의 망루로 쓰던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조롱박처럼 생긴 괌 섬 지형의 잘록한 중간 부분이 되는 산 속에는 최근 새로 생긴 관광법 「요꼬이·케이브」가 있다.

<조룽박 형의 섬 모양>
이곳은 한때 신문에도 소개되었지만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 군인 요꼬이 상사가 패잔병으로서 굴속에 들어가서 인간 사회와는 완전히 동떨어져 원시인과도 같은 생활을 한 곳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자연도 좋지만 역사적인 뜻을 지닌 관광지로서의 값어치가 있는 이 섬을 보는 것도 큰 공부가 되었지만 여기서 가장 기쁨을 느낀 것은 우리 나라 토건업자들이 와서 활약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노무자만 해도 1천5백명 가량이라고 한다. 그리고 더 가슴 뿌듯하게 느낀 것은 이 낯선 먼 고장에 와서 「로빈슨·크루소」처럼 개척한 동포 한 분을 만난 것이다. 그는 괌 섬 동부 산 지대를 개간하여 배추 오이 가지들의 재배에 성공한 농장 주인 안희섭씨다.
이런 외딴 섬에서 동포를 만나는 기쁨을 어디다 비기랴. 논어 서두에 나오는 『벗이 먼데서 왔으니 이 얼마나 즐거우뇨』하는 글의 경지를 뛰어 넘는 환희가 아니고 무엇이랴. 안씨를 만나 손을 쥐었을 때 서로의 눈에는 감격의 눈물이 괴고 한동안 들먹거렸다.
동포애란 정말 먼 나라에 와서 비로소 뼈저리게 느끼는 것인가. 더구나 비극적으로 살아온 우리 민족임에랴.
안씨는 3년 전 여기 와서 정글을 손수 개간하여 약 4만평의 농토를 일구었다는 것이다. 화산재로 뒤덮여 있기 때문에 기름지긴 했지만 물의 흡수가 빠른 토질 이어서 철수기로 늘 물을 대주어야 하는데 앞으로의 전망은 좋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하고 축복할 일인가.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서울에서 많이 듣던 『배추 사료, 무우 사료』하는 채소 장수 아저씨들의 소리가 이 낯선 괌 섬에서도 들린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하고….
이름도 없이 외딴 나라에 와서 묵묵히 황무지를 개간하여 옥토로 만들어 생산에 힘쓰는 세기의 일꾼! 이런 인간형이 참다운 우리의 모범자가 아닐까. 더구나 현대에 있어선 생산하는 것만이 조국과 세계를 구원하는 길일 뿐 아니라 최고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주민은 게을러요">
안씨는 『우리 동포가 이런 미개척지에 와서 살면 오죽 좋겠읍니까. 원주민이란 게으르니 말입니다. 그들은 자급 자족할 생각을 하지 않고 고기나 통조림 따위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또 쌀이나 채소는 일본 같은데서 들여다 먹지요. 특히 채소 값이 여간 비싸지 않거든요.
그러니 우리 나라에서는 정말 남의 나라에 가서 땀흘려 일한 사람을 보내어 개척하여 나가도록 하였으면 얼마나 좋겠읍니까. 나같이 능력이 부족한 사람도 이만큼 장만을 했는데 농업을 전공했거나 또는 능력이 있는 동포들이 이런 데에 진출한다면 성공하고 말고요하면서 오직 조국의 번영을 빌고 있었다. 오래 묵고 가라고 부탁하지만 여정 관계로 곧 떠나야하는 것은 섭섭했다. 나는 그와 헤어지면서 여기와 있는 우리 나라의 많은 토건 노무자들과 아울러 이 땅의 개척자 안씨에게 영광이 있기를 간절히 빌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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