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밀도 2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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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버스를 탈 때마다 가장 신경에 거슬리는 일이 있나. 탈 때나 내릴 때나 여차장이 등을 떠미는 일이다. 승객을 마치 짐짝 다루듯 하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여차장이 동을 밀어도 화를 내는 승객은 아무도 없다. 무신경해진 것이다.
남이 내리지도 않은데 밀어 헤쳐 가며 올라타는 승객들도 많다. 비좁은 자리에서도 발을 꼬아 앉는다. 옆 사람에게 흙이 묻을세라 조심하는 눈치는 조금도 없다.
노인이 서있건 아녀자가 서 있건 태연하게 자리에 앉아 있는 젊은이들도 많다. 이를테면 전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게 만원 버스 안에서의 불쾌감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일 것이다. 만약에 남을 의식하고, 다른 승객의 인권을 인정한 다면 만원 버스 안은 더욱 불편해질 것이다.
예전의 만원 버스나 전차 안에서의 풍경은 요새와는 달랐다. 승객들은 되도록 창 밖을 내다보려 했다. 남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도록 애를 썼던 것이다.
그러니까 얼굴을 맞대는 불쾌감을 모면할 수 있었다.
요새는 그렇지 않다. 애써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리려는 승객들이 드물다. 남과 시선이 마주 친다고 그리 불쾌하게 여기지 않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결국 타인에게 완전히 무관심해 질 수 있는 것이 오늘의 승객들이다. 다만 승객에게서 인격을 찾지도 않고 있음은 물론이다. 어느 사이엔가 사람들은 승객버스에 적응하게된 것이다. 조금이라도 만원 버스를 편하게 탈 수 있는 요령을 어느 사이엔가 터득한 것이다.
쥐를 고밀도 상태 속에서 사육하면 차차 공격적이 되고, 사소한 자극에도 쉽사리 흥분하게 된다. 이어서 환각 사망률이 높아지게 되고 서로 잡아먹기를 일삼게 된다.
그것은 내분비기관에 이상이 생긴 때문이라고 한다. 이리하여 심리학저들은 고밀도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인간의 심적 구조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게 마련이라고 보고있다. 물론 좋은 뜻의 변화를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기획원에서 최근에 발표한 인구추계에 의하면 우리 나라 인구는 서기 2천년에는 5천만명 선을 넘을 것이라 한다.
2천년까지에는 불과 27년 밖에 남지 않았다.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우리 나라의 인구밀도는 세계 제2위에 오르고 있다. 2천년에는 그 밀도도 더욱 높아갈게 틀림없는 일이다.
인구밀도가 높아질수록 식량·주택·위생·교육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때의 도시는 만원 버스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남남끼리 담소도 나눌 수 있던 버스 안이었다. 그게 어느 사이엔가 사람들은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기에 바빠졌고 이제는 남을 완전히 무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해야만 고밀도의 도시생활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어두운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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