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중앙문예」시 당선을 취소하면서|김종길 <시심사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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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미 발표되었던 문학작품의 일부 혹은 전부가 다른 사람에 의하여 표절되는 사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표절의 문제가 발생할 때 촛점이 되는 것은 그것이 완전한 표절이냐 혹은 분위기나「이미지」의 표절이냐 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라면 표절한 쪽에서 항변의 여지가 없는 것이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충분한 말썽의 소치를 이룬다. 작품을 만들기 위한「이미지」의 생성과정에 있어서 우연의 일치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좀 특수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가령 금세기 최고의 문제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T·S·엘리어트」는 다른 시인의 시구를 자기 것처럼 인용해 썼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있어서 방법의 문제이며 표절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합리화시키는 것은 될 수 없다.
이번 신춘「중앙문예」시 당선작으로 결정했었던『기구』에 대해서 참으로 아깝게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되었던 10여행을 삭제하더라도 그 시가 충분히 무게가 있는 역작이며 또 당선작으로서 손색이 없다고 믿고있기 때문이다. 작자는 여러 해를 시작에 몰두, 그 나름의 시 세계를 구축하여 몇 차례의 문학상을 수상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 그가 그러한 우를 범하여 당선이 취소되기까지 이르게 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설혹 이것이 그 나름대로의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순수해야할 신춘문예행사의 본뜻에는 크게 어긋나는 것이며 또 나쁜 전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본인을 위해서는 가슴아픈 일이지만 부득이 당선을 취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그러한 문제를 떠나서라도 작자의 시적 재능은 충분히 인정되므로 이러한 오점을 씻기 위해서라도 더욱 정진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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