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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감독관의 자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근로감독관들은 사회적으로 약한 근로자의 편에 서서 이들을 돕는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공정한 조정역할을 다함으로써 노사간의 정당한 관계를 유지, 발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이같이 당부한 14일 전국근로감독관 회의에서의 김종필 총리의 말은 앞으로의 노동행정의 기조를 시사한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종래는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을 채택하여, 어느편이냐 하면 주로 경영주를 두둔하는 정책을 펴 왔던 것이 사실이다. 53년에 일본의 노동기준법을 모방하여 근로기준법을 제정하기는 하였으나, 그것이 우리나라 실정과는 맞지 않는 점도 허다하여 사실상 이 법의 적용은 현실적인 제약을 받아 왔던 것은 주지하는 바이다.
그 단적인 예로, 작년말까지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구속된 자가 한명도 없었고, 벌금형도 고작 2만원 내지 5만원 정도에 그치는 유명무실한 실정에 있었던 것을 들 수 있다.
53년께에 같은 취지로 입법된 일본 근로기준법은 그동안에 있었던 수차의 개정을 통해 근로자의 권익증진을 위한 개선을 거듭해 왔음을 상기할 때, 우리의 그것은 오히려 개악되어 이제 일본과의 격차가 현저하게 되고 말았다. 일본의 노동조건조차도「유엔」국제노동기구(ILO)의 최저 기준에는 미달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근로자의 노동조건에 있어서의 이같은 낙후성은 힘겨운 조건하에서 공업화를 서두르려는 개발도상국가로서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것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우리도 어느 정도의 성장과 자본축적으로, 확대 재생산을 통해 어미 닭을 잡지 않고 달걀의 수익을 거둬들이기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근로기준법이 정한 최저한의 기준만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실정법의 법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나, 최소한의 국민복지 확보를 위해서나 필수적인 과정이라함은 재언할 여지가 없다.
이런 뜻에서 특히 이 나라 기업풍토에서 거의 만성화되다시피 한 일부 악덕 사용자들의 임금체불 행위를 없애기 위하여 1·14긴급조치가 임금채권의 우선변제청구조항 등을 신설한 것 등은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문제는 법조문의 보완이 아니라, 이의 실천이라 하겠다. 71년 현재 우리나라의 취업인구는 1천1백6만명인바 그 내용은 광공업종사자 1백39만명, 제조업종사자 1백31만명, 건설업종사자 33만명, 기타「서비스」업종사자 3백42만명으로, 근로자의 수가 농수산업 종사자를 제외하고도 6백60만명이나 되고 있다. 따라서 이들 근로자의 복지향상을 답보하기 위해서는 정부로서도 응분의 예산과 인원을 확보해주어야 할 것이다.
현재 노동청의 정기감독을 받고있는 대상업체는 약1만3천6백개에 이르고 있는데 전국의 근로감독관수는 고작 93명밖에 안되고 있다. 따라서 근로감독관 1명이 평균 1백40개가 넘는 업체를 맡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이들은 기동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예산도 미미하여 그 사기는 말이 아닐 정도로 떨어져 있다고 한다.
이러한 여건하에서 근로감독관들은 설사 작업장에 나가더라도 직접 근로자를 만나려고 하기보다는 기업주만 만나 그들로부터의 사정을 들어 형식적인 보고를 내게 마련인 것이다.
따라서 노동행정의 궁극적 목표인 산업평화의 유지와 근로자의 귄익보호를 위해서는 현재의 노동행정기구와 인원을 현실에 맞게 확충하고 이를 뒷받침할만한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선행조건이라 할 것이다.
근로감독관들이 부당노동 행위를 적발하고서도 올바로 고발조차 하지 않던 구폐를 일소하고, 근로자들의 불평불만과 간절한 소망들을 자기 일처럼 보살펴 주기 위해 능동적인 대책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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