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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지난 연말에 대학원 강의를 마치고 나서 학생들이 주동이 되어 책거리를 한 일이 있다. 한 학기 동안에 여러 과목 중에서 한 과목을 위해 7백 페이지가 넘는 인류학 이론의 영문 원서를 함께 읽고 토론하느라고 학생들과 선생이 다같이 여간 고역을 치른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세미나」의 준비로 흔히 밤을 새며 데이트를 묵살한 예도 많았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그래서 심지어 어떤 학생의 부모님은 대학원이 그렇게도 어려운 과정인줄을 처음 알았다고 하며 동생들 가운데는 돈을 주고 대학원엘 다니라고 해도 못 다니겠다는 반응까지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전문 서적을 한권 한권씩 다 읽어서 떼고 예정된 과정을 착실하게 마쳤을 때의 흐뭇한 느낌이란 등산의 「코스」에서 정상을 올랐다가 내려온 상쾌함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학창 생활을 떠나 뒷날에 자기의 전문 분야에서 일을 하게될 때 짜낼 수 있는 현명한 지혜의 원천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책거리를 받으면서 어릴 때의 글방 선생님을 생각했다. 우리 집 사랑방에서 10여명의 학동들이 한문을 배우고 있었는데 천자문과 동몽선습·계몽편·명심보감 등을 한권씩 다 읽고 베끼어 쓰는 일이 끝날 때마다 부무님들이 주선하여 선생님과 동료들에게 한턱씩 내곤 하였다.
나중에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니다가 방학이나 명절 때 고향에 내려가면 부무님들께서 약주와 담배 기타의 예물을 마련해서 글방 선생님을 찾아 뵙도록 하고 그때마다 그 그분은 여러 가지 유익한 말씀을 들려주시곤 했다. 그러나 막상 내가 커서 스스로 그 선생님을 찾아 뵙고자 했을 때는 그분이 이 세상에 계시지를 않아 무척 아쉬웠다.
글방을 비롯해서 국민학교·중고등학교·대학과 대학원을 거치는 동안 나는 여러 스승 밑에서 배웠다. 그분들 중에는 이미 작고하신 분도 계시고 지금까지 사제의 정을 나누는 분도 계시다.
나에게는 특히 학문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끊임없는 지도와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엄하고 인자하신 스승이 있어 지금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아가서 상의를 하며 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있는 나 자신의 긍지를 느껴왔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훌륭한 스승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새삼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탓으로 매년 신입생을 받고 졸업생을 내보낸다. 4년 동안이란 햇수가 지나면 졸업의 문턱에선 학생들이 사은회라고 조그만 잔치를 베풀어준다. 그때마다 선생으로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매년 연중 행사처럼 되풀이되는 학생 「데모」로 배워야할 것을 다 배우지 못하고 나가는 학생들이 측은하고 그들의 앞날이 염려스러울 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어야할 것을 다 가르치지 못하고 본을 보여 주지 못하는 선생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이런 경우에 스승과 제자의 정표는 무엇으로 할까? 이런 경우에 합당한 사도와 제자의 도리는 어떤 것일까?
한상복 <서울대 문리대·인류학>
집필이 바뀝니다 「파한잡기」의 필진이 바뀌었습니다. 그동안 수고해 주신 한병삼·고광우·권령대·장선영씨에 이어 새로 박찬기 교수 (고려대·독문학), 황병익 교수 (이화여대·국악), 최명관 교수 (숭전대·철학), 한상복 교수가 필자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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