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안 돌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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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로마17일 로이터합동】「로마」의「피우미치노」국제공항에서「팔레스타인·게릴라」들의 집단살인극이 벌어졌을 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당년 24세의 아리따운 미국의 한 여자의학도는 지금「로마」시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팬·암」기의 참상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비명이 들려 저도 모르게 달려가 손을 잡았더니 피부가 그대로 떨어져 나가는거예요. 그들의 얼굴 피부도 마치 삶은 문어처럼 부풀어올라 끔찍했지요. 처음 모든 비행기가 이륙하기를 기다리면서 어떤 사람은 신문이나 책이나 보고 혹은 한가로이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조종사가 기내무전기를 통해 바깥 공항건물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다급한 목소리로 모두 바닥에 엎드리라고 경고하는 거예요. 그러나 승객들은 어리둥절한 채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지요. 그랬는데 비행기 후미에서 별안간 큰 폭발소리가 들리고 비행기가 흔들렸어요. 그때야 큰일났다고 모두 미친 듯이 앞으로 몰려가려는데 뒤에서 또 큰 폭발이 터졌어요. 그러자 삽시간에 코를 쏘는 연기가 자욱해지고 뜨거운 화기로 금세 숨이 막힐 것만 같더군요. 안내원 아가씨가 몰려드는 승객 틈에 밀리면서 날개 옆 비상구의 문을 여는데 성공했어요.
불꽃이 기내로 번지자「스튜어디스」는 모두들 밖으로 탈출하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나 연기 때문에 진짜 불꽃은 보이지 않았어요. 가장 애먹이는 것은 연기였어요. 그것은 폭탄이 터지는 것보다도 나쁜 것이었읍니다.
당시 어린애의 울부짖음을 들을 수 있었지요. 내 뒤 가까운 곳에 몇 명의 어린이들이 있었어요. 그러나 나는 적어도 두 명의 성인남자들이 비행기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쓰러뜨리는 것을 봤어요. 그들은 완전히 미쳐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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