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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난 해소와는 빗나가는 이상수요「맨션」은 새로운 투기의 대상으로 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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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또 한해가 저문다. 많은 사회의 변화를 몰고 온 충격도 모두 세월속에 휘말려 가고있다.
그러나 격변의 한해를 이리 뛰고 저리 치달은 취재기자의 수첩에는 지워 질 수 없는 숱한 기록이 너무나 뚜렷하다.이 해를 보내는 마루턱에 서서 못다 적은 「메모」를 정리해 본다. <편집자주>
○…지난 10월 중순 어느 토요일 하오.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가을을 재촉하는 서울대문리대 「캠퍼스」의 이색 풍경. 재학생·졸업생·학부형들이 열심히「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대학가의 마지막 가을을「마로니에·캠퍼스」의 추억을 꼽게 간직하려는 듯.
마침 여류작가 전병순씨도 딸 강령주양 (22· 국문학과 4년)과 나란히 「칼라」사진3 0여장을 찍었다. 전 씨는 『이 아름다운 「캠퍼스」에 고작 「아파트」가 들어서다니.딸 아이의 친정이 없어지는 것과 다름 없잖아요』.봄의 개나리·「라일락」의 짙은 향기, 도서관의 밤늦은 불빛,뒹굴던 잔디밭,어느 한구석에도 젊음과 낭만의 추억은 서려있는 것이다.

<사라지는 캠퍼스>
○…지난6월×일,서울대 총장실의 전화「벨」이 잇따라 울리고 관악 「캠퍼스」건설본부 간부들의 「도어」여닫는 소리가 유난히 시끄러웠다. 『73년도 예산 중 53억2천2백만원을 기존재산매각으로 채워야 하지만 돈은 6억9천만원 뿐입니다』.건실본부장의 공사 진척 상황을 보고 받는 한심석 총장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문리대가 말리지 않는 한 이달 부터 관악 「캠퍼스」 건설공사는 중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S여대는 결국 살 의사가 없답니다. 땅값만 27억원을 들여「호텔」을 지어 봤자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 『할 수 없지요. 정부가 문리대 땅을 사도록 정치적 절충을 해봅시다.』문틈으로 간간이 새어 나오는 건설 본부 간부들의 목소리는 하나같이 힘이 없었다.
73년도 공사계획 35%를 진척시킨 건설본부는 재원이 확보되지않아 공사 중단위기에 직면,진통을 거듭하고 있었다.그로부터 2주일 뒤 한 총장이 총리실을 다녀온 뒤 국세청의 알선으로 주택공사가 문리대부지를 매입, 호화 「아파트」를 짓기로 한 사실이 밝혀졌다.(J기자 수첩에서)

<만원사위 맨션열병>
○…전통있는 대학의 원형을 송두리째 없애 버리고 아파트를 지어야 하는 문제는 각계에 커다란 충격과 함께 숱한 반항을 불러일으켰다.
평생을 문리대교수로 봉직한 L교수는 『도서관에 슈퍼마켓이 들어선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처음있는 일』이라고 격분했다.
서울대의대 교수단은 지난8월8일 간담회를 갖고 메디컬·캠퍼스로 쓸 수 있도록 문리대 「캠퍼스」를 보존할 것』올 건의했다.또는.이대 졸업생 주부들은 젊음의 낭만과 꿈을 심었던 모교의 교정을 중앙도서관으로 만들어 그대로 남기자고 연장을 돌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각계의 원형 보존 노력도 보람없이 그 동안 수많은 인재를 배출해온 문리대 「캠퍼스」는 주택 공사에 31억원에 팔러 넘어갔다.
주공은 이 자리에 7백30∼8백50가구가 입주할 6층「아파트」6동과 사대부지에 9백80가구가 입주 5층「아파트」 20동을 각각 74년3월에 착공,오는75년8월에 완공한다는 청사진을 펼쳐 놓았다.(K기자 수첩에서)

<분양신제자 구름떼>
○…도둑촌 파동이후 급작스레 선호의 대장이 된「맨션·아파트」는 날이 갈수록·수요마저 급증,마침내는 안락한 주거의 정도를 지나쳐 향락과 투기의 대상으로 변모하는 느낌마저 던져주었다. 서울시내 「맨션」 이란이름이 붙은 「아파트」는 자그마치 2O여 개.이들「맨션」은 어디서나 만원사례다.그래서 호화「맨션」입주 희망자들은 신축「아파트」로 줄지어 찾아 다니며 분양을 둘러싸고 갖은 추문을 드러냈다.
반포차관 「아프트」가 을해의 마지막 열병을 몰고 왔다.
무주택서민을 위해 분양 한다면서 무가옥 증명까지 요구한 주택공사는 입주금을 자그마치 1백만원,관리비와 월부금 등으로 매달2만5천원이상을 내야 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래도 분양을 바라는 무주택서민(?)은 구름처럼 몰려 들었다.1천4백72명을 추첨 했지만 하룻밤사이에 31명의 명단이 바뀌었다. 2중 당첨자 만도 1백9명으로 드러났다.
전매가 금지된 이「아파트」는 추첨이 끝나자 마자 이웃 복덕방에서 50만원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고급가구에 「흠바」>
이처럼 「맨션」 은 새로운 투자의 대장으로 변모하면서 부정 축재의 은닉처가 되기도 했다.상당수의 반사회 기암과 고급공무원이「맨션」을 차지하고 겨울철 별장이나 계약여인과의 은신처, 혹은 성장한 자녀의 향락의 밀실로 이용됐다.
방문자가 「인터폰」으로 내방을 알리면「도어·아이」로 감시를 당하고 고급 무늬목 마루 위에 수백만원 짜리 외국제 응접 「세트」가 놓인 응접실.30만원 짜리「샹들리에」 가 휘황 찬란히 빛나는「홈·바」엔 양주병이 가득 차고 주차장에는 의제승용차가 주인을 기다리는「맨션·아파트」가의 풍속도는 서민들에게는 분명 아찔하게 현기증 나는「아파트·쇼크」이다. (0기자 수첩에서) <정리 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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