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 악재에 숨죽인 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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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국내외 각종 악재로 부동산 시장이 숨을 죽이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극도로 거래가 침체됐던 아파트 시장이 봄 이사철을 맞아 일부 매매거래와 전세를 중심으로 반짝 움직임을 보였으나 최근 미국의 이라크 공격 임박과 북핵(北核)처리문제, 경제위기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매기가 갑자기 사라졌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현안이 이른 시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하면 부동산 시장은 보기 드물게 깊은 수렁에 빠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래D&C 유진열 이사는 "아직 본격적인 가격하락은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각종 악재가 도사리고 있어 거래가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 부동산 매수세 잠수=서울 서초동 씨티랜드 안시찬 사장은 "최근 며칠 동안 반짝했던 아파트 매매거래가 다시 끊겼다"며 "국내외 악재가 워낙 크기 때문에 사려는 사람들이 주저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분당신도시 구미동 대우공인중개사무소 한두배 대표는 "외부 악재 속에 최근의 SK분식회계 사태까지 불거져 매수문의가 뚝 끊겼고 가격은 당분간 보합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분양 시장도 분위기가 많이 나빠졌다. 최근 서울 강남에서 분양된 한 주상복합아파트 모델하우스에는 지난달만 해도 미계약분이 하루에 2~3가구씩 팔렸으나 요즘에는 투자자 발걸음이 뜸하다. 분양 관계자는 "가끔 오는 문의전화도 북핵사태나 이라크전쟁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라고 전했다.

경기도 고양시 사리현동에서 5백57가구를 분양하고 있는 동문건설의 김시환 이사는 "북핵문제.이라크전쟁.경제위기 등 최근의 사태를 걱정하며 청약을 주저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땅 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돌공인중개사무소의 진명기 사장은 "대부분의 고객이 봐 둔 물건도 사지 않고 고민하고 있다"며 "부동산 시장에 대한 불신이 점점 깊어지면서 매매거래가 성사 단계에 있던 5건의 땅 거래협의가 중단됐다"고 말했다.

◆ 집값 떨어질까=최근의 악재가 아직까지 가격에 본격적으로 반영되지 않고 있으나 상황이 오래 가면 하락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중앙일보 조인스랜드와 텐커뮤니티에 따르면 이달 초 서울 아파트값은 0.07% 올랐다. 텐커뮤니티 정요한 사장은 "거래가 거의 없는 가운데 일부 재건축 재료를 가진 아파트 단지만 움직인데 따른 것이므로 최근의 시세변동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당초 올 하반기에는 부동산 경기가 호전될 것으로 전망됐으나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며 "이 같은 상황이라면 올해는 집값이 급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문제는 담보대출이다. 집값이 떨어지면 금융권이 크게 타격을 받아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연구위원은 "특정 대기업의 부실이 외환위기 때처럼 경제 시스템 전체를 망가뜨리거나 연쇄적인 부실을 유발하는 사태는 없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북핵문제가 장기간 해결되지 않을 경우엔 부동산 수요자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줘 시장을 침체에 빠뜨릴 수도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황성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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