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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 육성, 이런 식으론 곤란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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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평소에 놀다가 시험 전날 벼락치기를 하면 대개 뒤끝이 좋지 않다. 국회도 정치 공방으로 허송세월을 하다 연말에 허겁지겁 100여 개 법안을 처리하다 보면 왕왕 뒤탈이 난다. 지난 연말에도 정치권의 관심이 온통 예산과 국정원개혁법 등에 쏠려 있던 틈을 타 상당한 논란거리가 될 법안 하나가 은근 슬쩍 통과됐다. 여야의 지방 의원들이 주도한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법’(이하 지방대육성법)이다.

 이 법은 정부가 공무원을 선발할 때 ‘지역 인재’가 일정 비율 이상 되도록 하고, 지자체는 공무원 신규 채용 시 자기 관할 구역의 지역인재를 일정 비율 이상 확보토록 하는 게 골자다. 또 공공기관과 근로자수 300인 이상의 기업은 신규 채용 인원의 일정비율 이상을 지역인재로 채우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이 ‘지역인재 쿼터제’를 도입하면 정부 지원도 받을 수 있다.

 그럼 여기서 생기는 당연한 의문 하나. ‘지역인재’란 도대체 뭔가? 이 법 2조엔 “지역인재란 지방대학의 학생 또는 지방대학을 졸업한 사람을 말한다”고 규정했다. 또 지방대학이란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른 수도권(서울·인천·경기)이 아닌 지역에 소재하는 대학이라고 해놨다. 즉 이 법에 따르면 서울 강남에서 초·중·고를 나와도 부산대에 가면 부산 인재가 되고, 여수 출신이 충남대에 가면 대전 인재가 된다.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얘기인가? 또 고졸자는 자동적으로 지역인재에서 배제된다. 고졸 출신 대통령을 두 명이나 배출한 나라에서 말이다. 방송대나 사이버대 출신도 지역인재가 될 수 없다.

 간단히 말해 지방대육성법은 수도권 대학의 취업문을 좁혀서 그만큼 지방대에 혜택을 주는 제로섬 게임이다. 국가 전체적으론 일자리를 한 개도 늘리지 못한다. 재래시장 살리자고 대형마트 문 닫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 백보를 양보해서, 물론 당사자들이야 펄펄 뛰겠지만, 서울의 대학들은 사정이 좀 나으니 불이익을 감수해도 된다고 치자. 인천·경기 지역엔 웬만한 지방대보다 사정이 열악한 대학이 수두룩하다. 이를 모조리 싸잡아 수도권 대학이라고 취업에 불이익을 준다는 건 ‘지방 이기주의’에 불과하다. 수도권대와 지방대로 갈라 취업 시 차별을 두는 건 위헌 시비마저 있다. 지방대를 살리려면 수도권 대학의 밥그릇을 빼앗는 것보다 뼈를 깎는 자구노력과 지역 내 대학 통폐합을 통해 자체 경쟁력을 키우는 게 먼저다.

 정작 웃기는 것은 이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압도적 찬성(찬 230, 기권 8)으로 통과됐다는 점이다. 반대 토론도 없었다. 지방 의원들이야 그렇다 쳐도 수도권 의원들은 무슨 생각으로 찬성한 걸까? 이에 대해 서울의 한 의원은 “법안 수십 개가 한꺼번에 올라오는데 무슨 재주로 내용을 어떻게 일일이 살피나. 당 지도부가 찬성한다니까 그냥 찬성했다”고 털어놨다. 경기 지역의 한 중진은 “경기는 지방으로 분류된 것 아니었냐. 잘못 알았다”고 난감해했다. 이런 게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