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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일본 세론의 대한기본자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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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회본회의는 22일부터 김종필 총리를 비롯한 정부각료를 출석시킨 가운데 김대중씨 납치사건을 에워싼 대정부질의를 시작했다.
이미 커다란 국제문제로 화한 김대중씨 사건이 우리 국회에서 공식거론 되는 것은 사건발생 후 이번이 처음이니 만큼 국내외의 시선이 여기에 총 집중돼 있음은 재언할 필요도 없다.
질의와 답변에 나서는 의원 제씨나, 정부각료들은 이점 특히 유의하여 사건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발언을 하도록 요망한다.
김대중씨 납치사건은 사건발생의 장소뿐만 아니라, 피해자 김씨의 피납 전 행동반경이 한·일·미 등 여러 나라에 걸쳐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게 짙은 정치성과 국제적 성격을 띠게 된 사건이다.
따라서 이처럼 미묘한 성격을 띤 사건을 해결함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납득이 갈 수 있는 객관적인 처리가 필요하다. 수사당국자는 최단 시일 안에 진범을 체포, 사건의 전모를 규명해 주어야 하겠으며, 이를 지켜보는 당사국 국민들도 일체의 근거 없는 억측을 삼가고, 수사 진행에 협조해야 할 것이다. 이것만이 진상을 규명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일부 성급하고 편협한 세론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대국적 견지에서 공정한 사건처리방침을 일관해서 견지해 온 한·일 양국 정부의 태도를 이번 김 총리의 국회답변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다만 이 기회에 지적돼야 할 것은 김씨 사건 발생 후 일본의 일부 세론에 나타나고 있는 냉정을 잃은 태도에 관해서이다. 김대중씨 사건은 사건발생 장소가 그들의 수도 한복판이었으며, 또 그들의 수사진을 비웃듯 감쪽같은 국외 탈출극이 연출됐다는 점에서 일본 세론의 일각이 한때나마 격앙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현 단계에서 타국 정부기관의 개입을 단정하여 대한 경협을 중단하라느니, 한·일 기본조약을 재검토하라느니 등 양국간의 기본관계까지를 들고 나와 한국과 한국국민의 비위를 거슬리게 하는 발언까지 함부로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일 기본조약이란 한국이 일본식민주의에 의한 국권의 포탈과 민생의 질곡이라는 민족적인 비극의 구원을 용서하고 일본과 일본 국민과의 관계정상화를 약속한 국가간 협약이다. 만약에 근자에 견문되는 일부 일본의 세론처럼 한·일 기본조약의 재검토 운운의 착상은 일본 국민의 일부가 한·일 기본조약을 마치 일본의 한국에. 대한 대국적인 배려처럼 생각하고 있는데 그 근거를 두고 있다면 한국민의 민족감정을 그 근저로부터 자극 않고서는 못 견딜 것이다.
한·일 기본조약체결까지에는 한국에서는 정권의 교체가 세 번이나 있었다. 「아시아」점령이란 일본의 제국주의 전쟁이 자유 연합세력에 의해서 패전으로 그 종식을 본 후, 계속 한·일 회담은 열렸지만 한국민의 뿌리깊은 대일 감정 때문에 그 타결은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여 왔었다.
한·일 기본조약이 체결될 당시의 요원의 불길처럼 일었던 한국 안의 폭발적인 반일기운을 일본국민들도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일부 일본의 세론이 대한「원조」의 중단에까지 비약함을 보고는 참 말로 통한을 금할 길이 없다. 일본이 언제 어떤 형태로 대한「원조」를 했단 말인가. 기본조약에 따르는 무상공여는 대한 순죄를 위한 배상의 성질의 것이라 함은 세인이 다 아는 바다. 기본조약에 포함되어 있는 상업차관조항을 기화로 해서, 일본의 기업들은 한국의 저임금과 저지가와 각종 특혜를 이용하여 보세가공에 의한 개발수입에 열을 올려왔다. 그러면서도 일본의 대한수입은 그들의 대한수출의 몇 분의1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도 작금에 개선되었다는 것이 그렇다.
또한 최근에 이르러서는 한국의 중화학공업계획에 편승해서 무세와 저지가 저임금을 발판으로 하여, 그들의 공해산업이나 저생산성부문을 한국에 수출하고 있다. 그들의 관광객은 마치 한국을 환락의 천지인양, 부도덕과 인색으로 방방곡곡을 활보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김대중씨 사건을 핑계로 대한「원조」중단을 논의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일본의 지성과 일본정부의 기본 태도를 믿는다.
다만 일부 일본 세론의 근저에 깔려 있는 기본자세, 그것을 문제로 하는 것이다. 만약에 한국과 한국 민에 대한 어떠한 선입견, 그것도 전전의 그러한 선입견이 그들의 기본자세를 그렇게 만들고 있다면, 양국과 양국민간의 우의를 위해서 크나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한·일 양 국민이 함께 반성하여야 할 점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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