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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보존운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매일 밤 정확하게 9시53분이 되면 「런던」도의 수위장은 촛불을 들고 2개의 황금열쇠를 높이 추켜들면서 걸어 나간다.
그러면 보초가 명령한다. 『정지! 거기 가는 것은 누구인가?』 그러자 수위장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엘리자베드」여왕폐하의 열쇠. 만사이상 없음.』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의식이다. 수 백년 전에는 그래도 분명 한뜻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상징적인 의미밖에는 갖고 있지 않다.
그런 의식을 영국사람들은 4백년 동안 거르지 않았다. 왕정이 중단되던 한때를 제외하고는 2차 대전 때 독일공군의 대 공습으로 어수선하던 동안에도 거르지를 않았다.
「런던」시민들은 매일같이 이 의식을 보면서 그네들의 자랑스러운 전통의 폭과 깊이를 느낀다. 이런 의식을 진부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래서 영국이 현대에 이르러 비약이 없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는 영국이 아직도 잘살고 있는 까닭이 그런데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곧 항상 뒤를 돌아다보는 그들의 자세가 영국을 그만큼이나 안정시켜주고 있다 하겠다.
최근에 서울대 문리대「캠퍼스」를 보존하자는「캠페인」이 동문주부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매머드·아파트」건립을 위해 헐리게 될 문리대「캠퍼스」란 실상 별것은 아니다. 몇 10배나 더 좋은 새 「캠퍼스」가 생길 판에 헐린다고 별로 아쉬울 것도 없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선선히 헐어버리기로 작정한 당국에서도 이런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리 떳떳한 터전도 못된다.
문리대 자리란 바로 옛 「제국대학」자리다. 그 케케묵은 도서관의 책들을 보면 일제 때 일인교수들이 남긴 손때며 필적이 그대로 있는 것도 많다. 그러니 오욕의 한「페이지」를 시원스레 지워버린다는 구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새것은 언제나 묵은 것 위에서만 이루어진다. 묵은 것을 등진 곳에서 새것이 뿌리 박을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가 역사의식을 갖도록 하자는 것도 이런 뜻에서이다. 기념물을 보존하는 것도 같은 뜻에서 매우 소중한 일이다.
지금은 헐리고 빈터로 남아 있는 옛 내무부건물도 그냥 보존해 두었어야 할 것이었다. 그게 일제 때 가장 우리네 농민들을 울리던 동양척식회사였다는 뜻에서 우리네 자자손손들에게 길이 남겨야했던 기념물이었던 것이다.
문리대 「캠퍼스」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한때는 우리 나라에서는 유일한 학문의 전당이던 곳이다. 서운하게 느끼는 것은 결코 동문주부들만은 아닐 것이다. 한편으로는 고분을 발굴해가며 옛것들을 자랑하고 또 한편으로는 기념물들을 마구 헐어 없애고….
기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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