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기록해야죠, 이 아름답고 위험한 동물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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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동물작가 엔도 키미오. 한국의 마지막 호랑이·표범에 대한 기록을 추적해왔다. 서울 가나인사아트센터의 호랑이 민화 앞에서 그는 “북한 호랑이와 표범의 흔적도 추적해 보고 싶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산업화가 한창이던 1973년 8월. 한반도 최후의 표범은 서울 창경원 좁은 우리 속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무더위로 인한 순환기 장애가 그를 쓰러트렸다. 맹수 전문가가 변변히 없던 시절이다. 날선 발톱과 송곳니가 무서워 누구도 치료를 위해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85년 2월. 누군가 한국 표범의 마지막을 추적하러 나섰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의 동물을 좋아하는 일본인, 동물작가 엔도 키미오(遠藤公男·81)였다. 엔도는 “담황빛 몸에 허연 가슴팍, 등과 옆구리에 검게 새겨진 매화 무늬가 나를 매혹했다”며 “이 아름답고 위험한 동물이 어떻게 사라져 갔는지를 꼭 되짚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울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지난 3일 오후 그를 만났다. 마침 그의 책 『한국의 마지막 표범』(한국학술정보)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엔도는 그때를 회고하고 “당시 한국은 한국전쟁의 참화를 딛고 발전을 거듭하느라 표범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던 듯하다”며 새삼 다시 안타까워 했다.

 소학교 교사로 일하다 73년 『원시림의 박쥐』라는 책으로 데뷔한 엔도는 표범·호랑이 등 동물 관련 서적 23권을 펴낸 이 분야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86년엔 한반도에서 마지막으로 잡힌 호랑이를 추적해 『한국의 호랑이는 왜 사라졌을까』라는 책을 일본에서 출간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18년 동안 호랑이 97마리, 표범 624마리를 사살했다는 자료를 공개해 화제가 됐다. 일본의 해수구제(害獸驅除·해로운 맹수 제거) 정책이 호랑이·표범 멸종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사실은 그가 처음 밝혀냈다. 엔도는 “아시아에서 사라져가는 동물의 미래를 위해 누군가 기록해야 한다는 신념을 품고 살았다”고 말했다.

 엔도는 85년 2월 마지막 표범의 행적을 좇아 한국을 방문한다. 75년 한국에서 표범이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계엄령 등 어수선한 시대 분위기 탓에 그때까지 미뤄왔다고 한다. 한국 지인의 도움을 받아 경남 합천 오도산 아래 가야마을을 찾았다. 창경원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낸 표범은 62년 2월 오도산에서 잡혔다. 황홍갑(당시 45세)씨가 설치한 올무에 표범의 허리가 걸려들었던 것이다. 20년이 지나 황씨는 세상을 등졌지만 주민들은 당시 상황을 어제 일처럼 떠올리고 있었다.

 “표범이 시뻘건 입을 벌리고 송곳니를 드러내긴 했어도 도망을 못 갔지.” “배가 꽉 조여서 그런지 표범 소리가 마치 비명 같더라고. ‘캬~, 캬악~’ 하는 게 말이지.”

 한 남성은 앞다리를 동여매려다 발톱에 할퀴여 손바닥을 다치기도 했다. 표범은 드럼통에 가둬져 황씨의 집에서 잠시 사육됐다.

 “표범이 송곳니를 드러내면서 으르렁거리면 모두 놀라서 도망갔었지.” “그르릉, 그르르르릉, 이랬지. 큰 톱으로 커다란 나무를 벨때 나는 소리처럼.”

 오도산 표범은 한 달 뒤 창경원으로 옮겨졌다. 황씨는 그 대가로 30만원의 상금을 받아 기와를 올렸다. 당시 창경원 오창영 동물부장은 “표범이 한 살도 되지 않은 수컷이었다”고 말했다.

 엔도의 모험은 계속됐다. 혹시 야생으로 남아 있을지 모를 표범의 자손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 충청 보은에서 에밀레미술관을 운영하는 조자용(1926~2000) 선생으로부터 “63년 3월 가야산 기슭의 마을에서 진돗개가 표범을 잡았다는 기사가 났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귀가 번쩍 뜨인 엔도는 경남 거창군 가야산으로 향한다. 거기서 표범을 잡은 황정길(당시 22세)씨를 만나 황씨로부터 “흑갈색의 몸체에 점박이 무늬가 있었는데, 녹색의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표범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어처구니 없게도 대구의 뱀 가게에 모피·고기·뼈까지 모두 팔려나갔다. 당시 한약상들은 표범을 영험한 약재로 인식해 뼛가루까지 비싼 값에 사갔다고 한다.

 엔도는 “한국 땅에서 호랑이·표범이 사라진 것에 일본의 책임이 있다”며 “일본인으로서 늘 미안한 마음이 들어 더 열심히 추적했다”고 밝혔다. 이어 “작가의 역할은 사건을 겪은 인물을 직접 찾아가 확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진실에 다가서고 좁혀가는 길은 어렵지만 즐거웠다”고 덧붙였다.

글=이정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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