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부활하라 신촌 … 그 꿈 담은 최인호의 두 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3면

대중교통전용지구로 6일 개통된 서울 신촌 지하철역과 연세대 정문에 이르는 550m 구간 내에 설치돼있는 고 최인호 작가의 핸드프린팅. [김상선 기자]

“인호(소설가 고 최인호·사진)는 북아현1동에서 하숙을 했어. 나는 홍대(건축미술학)에 진학해서 둘이 뻔질나게 만났지. 선술집 ‘장미의 숲’에서 밀가루를 발효시킨 ‘카바이드 막걸리’를 밤새 들이켰어. 인호 그 친구 술을 참 좋아했지. 인호나 나에게 신촌은 청춘의 거리이자 추억의 거리지. 인호 작품으로 영화를 만든 건 운명이었어, 나에겐 고향 같은 작품이니까.”

 영화 ‘별들의 고향’의 이장호 감독이 1960∼70년대 신촌에 얽힌 추억을 이렇게 되새겼다. 이 감독은 6일 신촌 지하철역에서 연세대 정문으로 이어지는 연세로 550m를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새로 개통하는 테이프 커팅식에 초대됐다. 폭이 3~4m였던 보행로는 8m까지 넓어졌다. 테이프를 자른 이 감독은 연세로 초입에 있는 홍익문고 앞으로 발을 옮겼다. 초·중·고 동창이자 대학 시절 신촌의 추억을 나눠 가진, 그리고 ‘별들의 고향’의 원작자인 최인호 작가의 핸드프린팅 동판이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서대문구청은 신촌에 ‘문학의 거리’를 조성했다. 1970~80년대 여러 소극장이 자리 잡고 있었고 수많은 문인과 예술인들이 술잔을 기울이던 곳, 90년대 록카페로 젊은이들의 문화를 주도하던 신촌을 되살리자는 취지였다.

대중교통전용지구로 6일 개통된 서울 신촌 지하철역과 연세대 정문에 이르는 550m 구간. 버스와 긴급차량만 통행할 수 있다. [김상선 기자]

 서대문구는 지난해 4월 한국 대표 작가의 핸드프린팅을 거리의 상징물로 설치하기로 결정하고 15명의 작가를 선정했다. 연세대 영문학과 64학번인 최 작가도 포함됐다. 하지만 최 작가의 침샘암이 악화되면서 작업을 진행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그러는 사이 지난해 9월 25일 최 작가가 별세했다. 서대문구 이현근 문화체육과장은 “유족들이 ‘생전에 동의를 하셨고 신촌에 대한 사랑이 크셨다’며 핸드프린팅을 허락했다”고 말했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과 직원들이 발인 하루 전인 9월 27일 빈소를 찾아 석고본을 제작했다. 유족은 동판에 새길 문구를 ‘원고지 위에서 죽고 싶다’로 정했다. 하지만 동판에 새긴 제작 일시는 유족의 요청에 따라 별세 한 달 전인 8월 25일로 하기로 했다. 이날 개통식에서 문 구청장은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최 작가의 사후에 제작했다”며 동판의 의미를 설명했다.

 최 작가의 대표작 ‘바보들의 행진’도 신촌이 배경이다. Y대 철학과 병태가 두발 단속에 걸려 경찰과 숨바꼭질을 하고, 여자친구 영자에게 키스 한 번 하려고 별의별 궁리를 다하던 그곳이 바로 신촌이다(영화에서는 입영 열차에서 키스에 성공하지만 소설에선 끝내 입술을 훔치지 못한다).

 지난해 12월 제막식을 한 핸드프린팅 동판에는 최 작가 외에 윤동주·김남조·고은·이어령·정현종·이근배·김승옥·유안진·조정래·강은교·박범신·정호승·도종환 작가의 손이 새겨져 있다. 손을 구할 수 없는 시인 윤동주의 동판에는 연대 교정에 있는 시비가 새겨졌다.

 2000년대 들어 신촌은 홍대거리에 밀려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경매업체에 따르면 2010년 8월부터~2013년 8월까지 신촌에서 나온 경매 물건은 730개에 달한다. 명동·강남역·홍대·건대 등 다른 주요 상권의 경매물건을 모두 합친 것(224개)보다 3배 이상 많다. 90년대까지 잘나가던 신촌의 임대료가 크게 오르면서 작은 가게들이 밀려났다. 그 자리엔 대형 프랜차이즈가 대거 들어왔다. 그러면서 젊은이 문화를 대표하던 신촌의 정체성이 사라졌다.

 신촌의 문화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은 지난해부터 활발해졌다. 연세대 조한혜정 교수 등 지역 주민과 문화예술인 40여명은 지난해 11월 신촌 독수리다방에서 ‘신촌재생포럼’을 출범시켰다. 첫 모임에서 공연센터 건립, 문화공동체 활성화 등 신촌의 발전 방향을 논의했다. 신촌민회의 이태영 사무국장은 “그룹 UV의 ‘이태원 프리덤’ 가사(신촌은 뭔가 부족해)처럼 뭔가 부족한 신촌을 문화로 채워 머무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글=강인식·안효성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