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7)-걷고싶은 거리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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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걷기 운동은 걷기가 운동으로 필요한 사람들에겐 매우 유익한 운동일는지 모른다. 밖에 나갈 때마다 차만 타고 다니게되고 방에 들어오면 책상에 마주앉아 일과 씨름하는 분들에겐 시간만 허락되면 적당한 거리를 걷는 것이 건강관리에 매우 유익할 것이다.
그러나 하루 만보 이상 수만 보씩 걷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거나 그만큼 걸으며 활동하는 사람들에게는 걷기를 운동으로 삼아 걷고싶은 마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요새 어떤 학교에서는 거의 강제성을 띠어 걷기를 시킨다는데 학생의 경우 거의 전부가 매일 수만 보씩 걷고있는 까닭에 운동으로서 거기에 강제성을 가지게 한다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한 것 같다. 우리는 그와 달리 도시교통의 폭주. 더군다나 출퇴근시간에 교통지옥을 약간이나마 해소해보려는 선의의 노력으로 모든 시민들이 별로 부담을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걷는 기풍을 가지게되면 상당한 효력을 얻을 것으로 짐작된다.
즐거움이란 역시 활보하는데 있는 것인데 무거운 짐을 가지고 걷는다는 것은 할 수 없어서 하는 고역인 것이다. 때로 우리들도 가벼운 마음으로 서울거리를 걷고싶은 충동이 있으나 감히 엄두를 못 낸다. 그것은 그 비좁은 인도에서 육체건강의 유익보다 몇 배나 더 심한 정신건강의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요새 도심지의 보도를 걸으면 10분을 더 못 가서 가슴이 막히고 기침이 나온다. 각종 차량들이 내뿜는 매연 가스와 음식점에서 내뿜는 냄새 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 아침에 새로 입고 나온 「와이셔츠」가 저녁때가 되기도 전에 더러워진다. 과거에 걸을 수 있던 골목길도 요새는 자동차가 질주하거나 주차장처럼 되었고 거리에는 인도조차 구별이 없다.
서울의 거리거리를 좁다하고 걸어야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걷기 운동을 말씀하시는 분들은 제대로 걸어보지 못하신 분들같이 생각된다. 걸을 수도 없는 서울거리를 우리더러 걸으라고 말한다면 어디를 어떻게 걸어보란 말인가.
걷기 운동 같은 것에 앞서 걸을 수 있는 거리를 만들도록 해야 할 것이다. 명랑한 거리가 만들어지면 시민들은 걷지 말라 해도 즐거움을 느끼며 걸을 것이다. 【조향록<초동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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