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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대학교수와『테니스』|연구의 피로와 권태 씻어주는 활력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건강은 연구생활의 첫 조건>
사람의 성격이나 개성을「햄릿」형이니「돈·키호테」형이니「이야고」형이니 하고 우리는 극히 안이하게 분류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또 그 직업에 따라 정치가는 어떻고 실업가나 은행가는 어떻고 성직자는 어떻고 대학교수는 어떻다고 막연히 유형화해 버리기도 일쑤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 교수가 약 1천명 있다 칠 때 실은 천의 개성이 있는 것이지 서울대학교교수라는 한 개의 개성유형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별의별 사람이 많은 것이다.
물론 직업상의 공통된 특징은 있지만 그것 하나로 그「사람」까지 묶어버리면 좀 곤란하다. 대학교수에 대한 유형화 개념 중에서 상식이 되어있는 몇 가지를 들면 이렇다. 대학교수는 술을 마시고 취해서는 안 된다. 교육자는 근엄해야하기 때문이라는 상식이다. 술을 마셨는데 어떻게 취하지 않을 수 있느냐 말이다. 인간의 본질적인 근엄성과 일시적인 취향과에 무슨 절대적인 포함관계가 있단 말일까. 다음 상식은 돈이나 물질에 대해서 무관심해야된다는 것이다. 선비는 가난해야한다는 상식이다. 가난 이 이상이라면 굳이 GNP 1천불 운운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음 상식은 대학교수는 24시간 책을 읽고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매우 지당한 상식이다.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다. 내 서재에만도 사다놓고 읽지 못한 책이 수백 권이 있고 도서관에 가보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것을 다 읽으려면 24시간가지고도 모자랄 정도다. 그러나 대학교수는-그 중의 특히 나는-고장 없는 정밀기계가 되지 못한다. 정신력과 더불어 활력에 넘치는 신체를 못 가지고는 불과 몇 시간의 집중독서도 되지 않는다.

<상쾌한 심신…정신집중 낳아>
그래서 나는 우선 이 몇 가지 상식에 도전해 보려고 결심했다. 패하면 사직할 도리밖에 없다. 그러나 첫번 상식과 두 번째 상식에는 여지없이 패했다. 술을 열심히 마셔보았는데 우선 돈과 몸이 도저히 감당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돈을 열심히 벌어보려고 결심했는데 절대로 벌어지지를 않는다. 오히려 심신의 과로만 가중될 뿐이었다. 그래서 감연히 또 하나의 도전을 하고 나선 것이 바로「테니스」다. 나로서는 사표를 건 도전이다.
이것마저 교수직에「마이너스」가 된다는 것이 증명되면 나는 완전 사퇴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요사이는「테니스 교수」라는 존칭마저 받게 되었다. 비가 안 내리고, 강의가 없고 피할 수 없는 일이 없는 한 오후1시간 내지 2시간은 반드시「코트」에서 마음껏 뛴다. 처음에는 그 피로가 며칠씩 가곤 해서 여기서마저 상식에 굴하는가 싶어서 암담했었지만 요사이는 완전히 극복했다는 자신을 가지게 되었다. 2시간 정도의「게임」을 하고서는 피로를 느끼지 앉는다. 그 심신의 상쾌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저녁에 책장에 마주 앉으면 물라 볼이 만큼 정신집중이 된다.
강의 후에 느끼는 피로와 권태증도 가신 듯 없어져 버렸다. 실로 산다는 것이-대학교수생활을 하면서 산다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것이었는지를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 같다. 지금 나는 50대지만 30대, 40대의 활력에 뒤지고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테니스」전후에 낭비하던 시간도 요사이는 꾀 있게 정리하는 버릇으로 옮겨가고 있다. 뭔가 꿈꾸던 업적을 세우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는 자신을 회복하게 되었다. 「테니스」의 고마움이여!

<연구실의 공해서 탈피가능>
우리는 누구나 고향에의 향수를 가지기 마련이다. 따져보면 이것은 원시에의-뭔가 원시적인 것에의 향수가 아니겠는가? 문명은 유목시대에 향수를 가지게 마련이다. 우리와「스포츠」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우리가 그 속에서 자라온 우리의 원천적인 것에 대한 향수의 몸부림일는지도 모른다. 권투시합에서 KO되는 것을 보고 환성을 올리는 것을 상기해보자. 사람을 때리는 대신 공을 때리고. 차고, 받고 하는 것이다. 그 공이 다시 이쪽으로 되돌아 못 올때 우리는 KO의「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히피」가 나오고, 나체주의자들이 나오고 미국에서는 자연식물이 인기를 얻고「노이로제」의 경·중환자들이 격증해 가는 것은 현대의 문명이 소산한 것들이다.
공해는 우리의 연구실 안으로까지 스며들기 시작하고 있다. 이 문명의 피해를 벗어나기 위해서도 우리는 운동을 하고 땀을 흘려야 한다. 우리 피부에 땀구멍이 있는 것은 땀을 흘리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땀을 흘리기로 작정한 깃이다.
그런데 땀을 흘리기로 작정한「스포츠」중에서 내가 유독「테니스」를 택한 것은 50 아니 60이 넘어서까지도 계속 할 수 있는 것이「테니스」뿐이기 때문이다. 많은 인원이「팀」을 구성할 필요도 없다. 「골프」처럼 시간과 돈이 많이 들지 않아도 된다. 어려워서 더 재미있다. 그 수많은「테크닉」과 강약의 타법의 무상한 변화. 그리고「유니폼」의 백색이 좋다.
그「월츠」적인 율동이 우아하기 이를 데 없다.「게임」에 열중해서 흥분했다가도 유독 강조되는 그「페어·플레이」정신에 이성을 되찾고 하는 것도 좋다. 이 글을 쓰다보니 벌써 새벽2시가 되었다. 오늘도 대학교수 3백 여명이 모여하는 인류사상 초유의 대 시합에 나가야한다. 그러나 하등의 피로도 없이 끝까지 뛸 자신이 있다. 나는 우리의 동료들이 하루라도 빨리「코트」로 나오라고 강권하고 싶다.
글=황찬호 교수<서울대학교 어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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