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로프」의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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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68년 6월 소련에서 조그만 책자 하나가 지식인들 사이에 비전되고 있었다. 진보파 지식인들은 이 책자를 보고 깊은 충격과 함께 감동을 받았다. 그것은 드디어 서방세계로 새어나와 영역, 햇볕을 보게 되었다. 「안드레이·사하로프」저 『진보·공존 및 지식인의 자유』(Progress, Coexistence and Intellectual Freedom).
「사하로프」는 소련에선 『수소 폭탄의 아버지』로 불린다. 1942년「모스크바」대학 물리학과를 수석으로 졸업, 26세에 PhD를 받았다. 소련의 경우 이 학위를 받으려면 적어도 한 부문에서 15년 동안의 전공을 해야 한다. 「사하로프」는 특별한 예외였다. 2차 대전 중에도 그는 병역을 면제받고 연구소에 들어앉아 있었다. l950년 수폭 개발을 완성, 53년엔 32세의 청년이 소련 과학 「아카데미」회원으로 추대되었다.
그가 소련에서 이단아가 된 것은 유전학에 대한 이론 때문이었다. 그는 『환경이 인민의 유전인자를 변화시킨다』는 사회주의적 유전론에 반기를 들었다. 「멘델」의 법칙을 옹호한 것이다.
소련에서의 『수소폭탄의 아버지』가 미국에서의 『원자폭탄의 할아버지』인 「아인슈타인」과 똑같은 신념을 갖고 있는 것은 흥미 있다. 그들은 모두 물리학도로서 인류를 멸살할 수 있는 무기를 개발했으며, 끝내는 한 철학자의 입장으로 정도, 깊은 사색에 잠기게 되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전쟁」을 「휴머니즘」에 대한 배반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따라서 『비정사회로부터의 인간의 해방』에 진지한 관심을 쏟았다.
「사하로프」는 바로 앞서의 저서에서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 『현대의 인민들은 독단과 위선의 손아귀에 붙들러 자칫하면 피 비린내나는 전제의 수렁 속에 빠지는 대중 신화에 감염되기 쉽다』는 것이다. 이런 「신화」는 쉽게 「스탈리니즘」이나 「파시즘」 「나치즘」혹은 「마오이즘」(모택동 주의)을 낳는다고 「사하로프」는 개탄한다.
그가 갈파한 그 유일의 처방은 『사상의 자유, 지성의 자유』이다. 「사하로프」는 오늘날 『지상의 자유』를 위협하는 것 중엔 『관료적 전제의 굳어 버린 독선』 『이들 관료주의의 전가보도인 「이데올로기」의 검열』등을 지적하고 있다.
최근 외신에 따르면 「사하로프」는 서방 기자와의 대담에서 또 문제의 발언을 하고 있다. 『소련 사회, 그 자체의 민주화가 수반되지 않는 화해(서방과의)란 우리(소련)의 「룰」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밖엔 안되며, 그것은 위험한 것이다.』
이것은 내부의 긴장과 억압은 그대로 강화된 채 외부와의 화해란 하나의 허구에 불과 하다는 의미이다. 비록 외부와의 전쟁은 그 화해로 무마할 수 있지만, 이것은 내부에서의 불안과 우울이 다시 시작되고, 지속되는 또 하나의 비극을 낳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뜻이다. 「화해」라는 허구 속에 인한 내면의 절실한 갈망인 「휴머니즘」이 무참하게 짓 밟혀 가는 것을 「사하로프」는 냉혹히 고발한 것이다. 『전쟁이 없는 비인간의 세계』야 말로 인류의 새로운 도전이며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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