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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의 유라시아 철도 5·24조치 풀리면 뻗어나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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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다 보면 강대국에 안보를 의존하게 되고, 주변국은 이런 약점을 틈타 영향력과 발언권을 키우게 된다. 이런 현상이 심화되면 결과적으로 한국은 한반도의 주변인에 머물게 될지도 모른다.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는 “한반도 주변 열강들이 새로운 각축을 시작한 상황에서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모든 것이 다 후퇴한다”며 “동북아의 강력한 피스 메이킹 국가로 우리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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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결국 5·24조치 해제나 완화를 위한 남북 물밑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학과 교수는 “5·24조치는 정책적 효용성 측면에서 이미 실효성을 다했다”며 “경협 당사자인 남측 기업의 피해가 속출한 반면 북한은 제재에 따른 피해를 중국을 통해 회피했다”고 지적했다. 고수석 한화생명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북한은 정치구조 때문에 남한에 먼저 손을 내밀기 어렵다”며 “체제 경쟁에서 이미 승리한 남한이 전향적인 조치를 먼저 내놓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한 비무장지대(DMZ) 평화공원을 건설하거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추진하기 위해서도 5·24 조치 해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경제상황을 감안하면 DMZ 평화공원은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투자하고 건설해야 한다”며 “정부가 5·24조치로 대북 신규투자와 방문을 금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분계선 남쪽에만 공원을 건설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한 유라시아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나 러시아 가스관 연결 역시 북한 지역의 철도를 현대화하고 가스관을 매설하는 등 대규모 대북 투자가 불가피한 사업이다. 5·24조치를 풀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들이다.

 5·24 조치가 해제 또는 완화되면 한국 경제에 돌파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많다. 5·24조치가 해제되면 개성공단에 이어 휴전선 남쪽 접경지역에 새로운 개념의 남북 협력 공단을 건설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도 그중 하나다.

 정호조 철원군수는 “남북이 원칙과 신뢰를 바탕으로 접경지역을 적극 활용하지 않는다면 남북 경제협력 및 ‘그린 데탕트(Detente)’는 매우 어렵다”며 “개성공단 폐쇄에 따른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새로운 남북공단 건설은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경제 활성화에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정부의 결단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대북 제재조치를 취하는 것 이상으로 그 조치를 해제하는 것이 국내 정치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며 “그러나 언제까지 대결적인 반북 여론에 기대 남북관계를 닫아놓을 수 있는지, 그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북 사업 경험이 있는 대기업의 한 임원도 “박근혜정부의 기조가 지금처럼 유지된다면 북한의 양보만 기다리다 5년간 남북관계의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예상했다.

 절충론을 제시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조봉현 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5·24 조치의 유연화 확대 전략을 적극 추진해 점진적으로 사실상 해제 수순으로 가는 방안이 좋다”며 “2014년 하반기에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큰 틀에서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해제 선언을 검토하거나 국회가 해제를 결의하고 정부가 수용하는 것도 모양새가 좋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최진욱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5·24조치를 직접 무효로 하기보다는 5·24조치를 실질적으로 무효로 할 수 있는 새로운 대북 지침을 발표하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특별취재팀=강민석·장세정·채병건·허진·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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