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비 1조8000억 깎아 복지·SOC 예산 늘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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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의원들이 1일 오전 본회의장에서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 처리를 앞두고 쪽지예산에 대해 항의하며 퇴장한 야당 의원들을 기다리다 졸고 있다. [김경빈 기자]

박근혜정부의 집권 2년차 ‘가계부’인 2014년 예산이 355조8000억원(총지출 기준)으로 결정됐다. 정부 제출안(357조7000억원)이 국회 심의를 거치면서 1조9000억원이 줄었다. 지난해 예산(349조원·추경 기준)보다는 6조8000억원 늘어난 액수다.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나 정부 운영의 중점 정책과 관련한 예산은 정부안을 유지하거나 일부 증액돼 기조가 유지됐다. 반면에 정보기관 관련 예산 등 쟁점 예산은 깎였다.

먼저 보육사업의 국고보조 지원이 정부안보다 대폭 늘었다. 여야가 보육사업의 국고보조율을 정부안보다 5%포인트(서울 35%, 지방 65%) 높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방정부의 예산부담은 줄어들게 된다. 또 맞벌이, 저소득층, 한부모 가정 자녀를 대상으로 한 ‘초등돌봄교실’ 시설비 재원의 70%(1008억원)를 국비 지원하기로 했다.

지방대학 특성화 지원에도 2031억원(100억원↑)이 투입된다. 국세인 부가가치세 일부를 지방자치단체의 재원으로 쓰게 한 지방소비세 전환율도 정부가 제시한 8%보다 3%포인트 높인 11%로 결정했다. 이 밖에 영유아 필수접종 대상과 중증장애인을 위한 교통수단 지원(55억원), 저소득 근로자에 대한 생활안정자금(819억원) 등 사회·복지 분야에서만 4467억원의 예산이 증액됐다.

 사회·복지 관련 예산을 대폭 늘린 여야는 모자라는 부분을 예비비에서 갖다 메웠다. 예비비는 수해·구제역 등 재해대책, 환율변동에 따른 원화부족, 취득세 감소액 지원 등 예상외의 목돈이 들어갈 때를 대비해 남겨놓은 여윳돈이다. 기획재정부는 당초 예비비를 5조3343억원으로 책정했으나 국회는 1조7989억원을 깎았다. 6월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고 복지 예산이 불어나면서 여야가 “당장 돈 들어갈 데부터 쓰고 보자”는 데 힘을 합친 결과다. 여야는 지방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고속도로(1조4094억원)·고속철도(1조7928억원)·항만(1조2091억원) 등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4274억원 증액했다.

 민주당이 당초 대규모 삭감을 주장했던 창조경제 관련 예산은 대부분 원안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늘어났다. 창조경제 기반 구축 예산 45억원과 디지털콘텐츠코리아펀드 예산 500억원은 그대로 반영됐고, 창조경제 교류공간 운영 예산(23억원→40억원)은 17억원 증액됐다. 창조경제기획단 운영 예산(6억원)은 새로 편성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했던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 예산 227억원도 원안대로 반영됐다.

 반면에 새마을운동 지원, 새마을운동 세계화, 아프리카 새마을운동 예산은 각각 18억원, 5억원, 3억원 삭감됐다. 정치 쟁점이 됐던 정보기관의 정치개입 의혹과 관련된 예산은 줄줄이 깎였다. ▶군 사이버사령부 예산은 9억원 ▶군무원 인건비는 14억5000만원 ▶정보통신기반체계 구축 사업 중 사이버사령부 관련 예산도 4억원 줄어들었다. 기재부 예비비가 대폭 깎이면서 이 안에 포함된 국정원 특수활동비 명목의 예산도 상당 부분 줄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 ‘우편향 안보교육’ 논란을 빚었던 국가보훈처의 나라사랑정신계승발전 사업 예산도 37억원에서 25억원으로 12억원이 줄었다.

 국회는 또 차기전투기(FX) 사업 관련 예산 3664억원,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사업 예산 30억원을 각각 삭감했다. 제주해군기지 관련 예산도 500억원 줄어들었다. 이 밖에 보훈처가 추진하려던 이승만 박사 전집 발간 예산 1억원을 전액 삭감했으나 정부 원안에 없던 노무현 전 대통령 기념사업 예산으로 40억원을 신규 편성해 통과시켰다.

글=강태화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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