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연안에 「멸치위기」 남획·생태학적 균형 파괴 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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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세계에서 가장 큰 어장으로 꼽히는 「페루」 연안의 멸치 어장이 개장 16여년만에 「엘·니뇨」라고 불리는 생태학적인 균형파괴와 남획으로 인하여 황폐화할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연간 1천만t 이상의 어획고를 올려 1970년만 해도 「페루」 외환수익 3분의l에 달하는 3억4천만 「달러」를 벌어준 멸치 어업이 사양화하고 있다는 것.
「페루」 근해에는 4개의 해류가 교우하고 있는데 이들이 서로 부딪치며 이루는 바다의 자연환경이 곧 멸치어군을 풍성하게 하고 고갈시키는 직접적인 원인 중하나이다.
4개의 해류 중 연안을 끼고 흐르는 「페루」 연안해류와 먼바다 밖을 흐르는 대양해류는 북쪽방향으로 흐르고 이 두 해류사이를 표면 가까이 흐르는「페루」 반류와 이 세 해류의 바다 밑으로 흐르는 저류는 남쪽으로 흐른다.
멸치는 대부분 연안해류의 「페루」 연안북쪽에서 서식한다. 연안 해류는 수온이 낮은데 멸치가 좋아하는 조건이다.
바다에서 부는 강력한 바람이 표면의 해수를 실어 가면 없어진 물을 채우려고 깊은 바다 속에 낮은 수온의 물이 표면에 솟아오르는데 이 현상을 용승(upwelling)이라 한다.
「페루」 연안에 거대한 멸치 어장을 마련해 주는 것은 바로 이 용승류의 효과 때문. 전세계 바다면적을 고려하면 무시할 정도의 면적에서 세계어획고의 22%를 올리게 하는 용승류의 효과는 다름 아닌 풍부한 영양분 공급이다.
바다아래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해양훈식물이 죽어 쌓인·결과로 축적된 인과 질소가 많은데 용승류가 표면에 솟아오르면서 이 영양분을 해표면 가까이에 올려놓는다. 이들은 바다식물들이 번성하는데 필수적인 영양분들이다.
이렇게 하여 먹이 사슬(food chain)이 시작되며 규조 식물과 식물성 「플랑크톤」이 첫번주자가 되는 것이다. 용승류가 공급하는 영양분과 풍부한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여 번성하면 이것을 먹고사는 조그만 물고기, 이 물고기를 먹는 큰 물고기 순으로 먹이 사슬이 이어지며 모두 번성하게 된다.
「페루」 해류에서의 먹이사슬은 이런 식으로 이어져 대개 멸치에서 끝난다.
이렇게 해서 연중 멸치가 가장 많을 때는 1천5백만∼2천만t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최근 「엘·니뇨」라는 생태학적인 변화에 의해서 멸치어군이 격감하는 이른바 「멸치위기」가 초래되고 있다는 것이다.
북쪽으로 흐르는 해류의 속도가 느려지거나 때로는 거꾸로 흐르게까지 되어 수온이 오르고 염분농도가 줄어든다.
또한 용승 효과가 줄거나 그치게 되므로 영양 공급이 끊겨 풍부하던 식물성 「플랑크톤」, 규조 등이 격감하므로 먹이사슬을 따라 올라가며 모두 줄어 멸치도 자연히 줄어든다.
이러한 현상이 바로 「엘·니뇨」다.
「엘·니뇨」는 바로 불규칙하게 일어나며 7년 주기설도 있으나 2∼3년 계속되기도 하고 10년 혹은 그 이상 기간에 걸쳐서도 안 일어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이 오는 것은 수온이 상승하는데서 알아볼 수 있으며 원인으로는 대규모의 해풍변화와 바다변화를 들 수 있다.
일정하게 불어오는 동남 무역풍이 약화되거나 서풍으로 방향이 바뀌면 북쪽으로 흐르는 대양해류의 힘이 약화된다.
평소에는 약세이던 「페루」 반류가 변화된 바람의 영향을 받아 연안해류와 대양해류 사이를 깊숙이 뚫고 훨씬 남쪽으로 내려온다. 그래서 한류 위를 30m 깊이로 섭씨 7도나 더 높은 열대수로 덮어 「엘·니뇨」 현상이 일어난다.
멸치 수자원 고갈이유 중에는 남획도 지적된다. 1970년의 어획고인 1천2백30만t은 어업 전문가들이 적정량으로 보는 최대 지속생산량 1천만t을 훨씬 초과한 남획인 것으로 보고 있다.
수지맞는 사업이라는 이유로 무모하게 확장만 서둘러온 어선과 가공공장이 남획의 원인이며 현재 보유어선의 25%를 줄여도 1천만t을 잡기에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멸치어업에 위기가 닥친다는 증거는 「니뇨」 해인 1972년 어획고와 금년 초의 어획고에서 명백해진다. 1972년에는 겨우 4백50만t을 잡았을 뿐이고 금년에도 3백만t이 넘지 못하리라는 어두운 전망이다. <이운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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