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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의료법 … 충치 뽑으면 불법인 치과 생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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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회사원 김소현(33·여)씨는 3년 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강남의 동네치과에서 앞니 라미네이트를 했다. 미용 차원에서 치아 표면을 살짝 벗겨내고 세라믹 등을 덧씌우는 시술이다. 하지만 2년 정도 지나자 치아 끝이 깨지고 잇몸 색이 푸르게 변했다. 김씨는 결국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다시 받았다. 김씨는 “강남 병원의 치과의사도 자신을 보철 전문이라고 소개했는데 전문의가 아니었다”며 “동네치과에선 누가 전문의인지 제대로 알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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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의원급 치과에서는 전문의라 하더라도 교정이나 보철 등 자신의 전문과목을 병원 이름에 표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새해부터는 교정이나 보철 등 전문과목 이름을 내건 동네치과가 생긴다. 대형종합병원(300병상 이상)에서만 전문과목을 표시할 수 있도록 한 의료법 제한 규정이 풀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치과의사 전문의는 1571명이다. 치과의사(2만6791명) 100명 중 약 6명(5.86%) 정도다.

 대신 전문과목을 표시한 동네치과에선 발치나 충치치료 등 다른 진료는 할 수 없다. ‘전문과목을 표시한 치과의원은 표시한 전문과목에 해당하는 환자만을 진료해야 한다’는 규정(의료법 제77조 3항) 때문이다. 2010년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모든 진료를 허용하면 동네치과에서 전문성을 내세워 과도한 진료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 같은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 조치가 오히려 환자의 불편을 일으킬 것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임플란트 전문 동네치과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다른 일반 치과에서 먼저 충치와 잇몸 치료를 받고 다시 전문치과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치과를 찾는 환자들의 특성상 충치나 잇몸, 보철 치료 등을 한곳에서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팀장은 “환자에게 의사의 정보를 제공해 질 높은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게 한다는 본래의 취지에 어긋난 규제”라며 “전문 동네치과를 찾은 환자들이 불편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규정이 생긴 것은 2008년 치과 전문의 제도가 생길 때 기존 치과업계의 힘에 밀린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다 보니 일반 의사·한의사 전문의 제도에는 없는 제한 규정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강운 대한치과의사협회 법제이사는 “동네치과에서 소수의 전문의들이 전문과목을 내세우며 광고를 할 경우 일반 치과의사들의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치과전문의와 수련의 등 치과의사 30여 명은 이런 의료법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법률대리인인 오승철 변호사는 “이 조치가 치과전문의에겐 직업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하고, 환자 입장에서는 의사를 선택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해당 의료법 조항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복지부도 과거 입법 당시 “다른 의료인과 형평성 문제가 있고 국민의 진료선택권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복지부 한상균 구강생활건강과장은 “내년부터 당장 전문과목을 표시하겠다는 치과의사 전문의는 전체의 절반 정도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환자 불편이 없도록 살피면서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김선욱 법무법인 세승 대표 변호사는 “정부가 오래전부터 계속돼 오던 치과업계 내부 갈등을 대화로 조정하지 못하고 정책 결정을 사법부에 맡겨버린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김혜미·이서준 기자

◆치과의사 전문의=2003년 치과의료를 분야별로 전문화해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인다는 취지로 치과의사 전문의 제도가 도입됐다. 2008년 처음으로 전문의를 배출했다. 전문과목은 구강악안면외과·치과보철과·치과교정과·소아치과 등 10개다. 내년부터 치과의사 전문의는 의료기관 이름을 표시할 때 고유 명칭과 의료기관의 종류(의원·병원) 사이에 전문과목을 표시할 수 있다. 예컨대 홍길동 치과교정과 치과의원 같은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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