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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방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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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예년보다 빨리 닥친 무더위 때문에 국민학교와 중학교의 여름 방학이 앞당겨 진다. 대학도 대체로 이미 종강이 된 형편인데, 그렇다면 왜 하필 고등학교만 떼어놓는 것인지, 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덥기는 누구나 마찬가지다.
형식적인 법정 수업 일수만 메우기 위해서 푹푹 찌는 복더위 속에 교사와 학생들을 답답한 교실에 붙잡아 둔다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도 득이 될 것이 없다.
우리들 생각으로는 여름 방학은 좀더 길어서 좋다고 보며, 그 대신 심신이 긴장되는 겨울학기엔 차라리 방학을 훨씬 단축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적어도 모든 학교들이 난방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함은 더 말할 필요가 없는 전제이다.
여름방학이 좀 더 길어도 좋다고 하는 소견은 여름철엔 무작정 아이들을 놀려서 좋다고 말하려는 소극적인 주장은 아니다. 교육은 학교 교실에서뿐만 아니라, 교실 밖, 가정과 대자연 속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는 적극적인 견해를 우리는 지지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학교 교육은 갈수록 어떻게 보면 자라나는 인격과 자연과의 접촉의 기회를 빼앗아가고 있다. 새벽에 콩나물 시루 속 같은 「버스」를 타고 등교를 해서는 다시 콩나물 시루 속 같은 「버스」를 타고 하교 할 때까지, 온종일 어린이들은 역시 콩나물 시룻 속 같은 교실에서 생명 없는 교과서를 통해서만 자연과 인생과 세계를 학습한다. 이처럼 자연과 단절된 교육의 현실은 특히 도시의 어린이들에게 더욱 심각하다.
그들은 이른바 나라의 꽃이라고 하는 무궁화조차 순경들 모자에 붙은 금속성의 무궁화나 노래로 부르는 형체 없는 무궁화 밖에는 모르고 자라기가 일쑤이다. 그들은 도대체 발바닥에 흙의 감촉조차 체험할 기회가 어려운 나날 속에 진학을 한다.
이 같은 오늘의 학생들에게 여름 방학은 곧 자연을 다시 해후하고 자연과 다시 친화할 수 있는 희한한 「찬스」요, 또한 규율적인 자체 수련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바다에 가서 지평선을 바라보며 하늘의 무한과 파도의 반복의 무한을 배우는 것도 좋다. 높은 산에 올라 땀방울 속에 실감되는 생명의 감동과 초원의 후련함을 배우는 것도 좋다.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도 단순히 맨발로 논두렁을 걸어보거나 매미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도 좋다. 혹은 마당의 평상에 드러누워 참으로 오랜만에 마음놓고 밤하늘의 별을 세어보는 것도 좋다. 여기 자체 수련의 목표를 세워놓고 몸을 단련하고, 계획된 일정표에 따라 고전들을 섭렵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학교의 교실에서는 배울 수 없고, 실감 할 수 없는 자연과 인생의 새로운 진리를 계시해 줄 것이다.
각종 공해에 오염된 자연 환경과 지나치게 단기적인 경쟁 원리에 쫓기고 있는 사회 환경 속에 찌들어 가고 있는 생명에는 비단 육체적인 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 있어서도 자연과의 교감을 다시 회복한다는 것은 긴요한 일이 되고 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이 다같이 그를 요구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자연은 생명의 원천이다. 여름 방학은 그 자연에 돌아가서 자연을 배우고 자연 속에서 덕을 쌓는 공부의 기회이다. 과외 공부에 창백해진 심신이 이런 기회를 통해 구리 빛 건강을 되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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