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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남녀문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새로운 북한사회는 김일성의 추상적인 권위주의와 더욱 철저한 지배를 굳히기 위해 전래의 가부장적인 가족제도가 당간부들에 의해 단계적으로 와해되는 과정에 있다.
전래의 한국가족제도는 가장이 자녀들 교육에 절대적 영향력을 주어 왔으나 이제는 당간부와 기업소의 노동당지도원들이 가장이 하던 일의 대부분을 맡고 있다. 결혼예식마저 이들에 의해 계획 마련되고 거행된다. 즉 『아버지 김일성』의 대리인 당지도원들이 미래의 부부들을 정하여 준다.
27세 이전에 결혼하는 것은 공식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되어 있다. 27세가 되기까지는 유치원에서부터 군사조직에 이르기까지 남녀가 엄격히 분리되어 생활한다.

<피임·임신중절은 금기>
초·중등학교와 소년단 조직에서도 따로 교육을 받으며 대학강의실에서 조차 남녀학생들의 좌석이 구분되어 있다.
북한사회에서는 몇 사람만 모이면 줄지어 행진하는데 대학식당에 갈 때도 남녀학생들은 따로따로 대오를 지어 들어간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27세가 되기 전에 남녀간에 애정이나 성관계를 전혀 갖지 않는 것은 『공산주의 「모럴」』의 결과로서 높이 평가되어 칭찬 받는다. 『27세가 되기 전에 「걸·프렌드」를 갖거나 결혼하는 사람은 올바로 작업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이다.
피임수단이라든가 임신중절은 배격되고 있는데 『그 따위는 우리들에게 필요 없다』는게 그들의 주장이다.
성에 대한 일반적인 억압은 여성이 생산에 참여함으로써 해방됐다고는 하지만 여성은 여전히 억압되고 있다.
이는 거의 모든 여성이 입고 있는 「섹스」를 제한하는 전통적 치마저고리에서 뿐 아니라 영화장면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즉 남자가 군복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자녀들이 아버지의 목에 매달리는 등 법석을 떠는데 아내는 짐을 받아들고는 그냥 집안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여성들도 점차 남성화>
여성들이 생산활동에 참여하고 노농적위대의 민병조직이나 군에 입대하는 등 이전의 사회적 역할에 비하면 『해방』됐다고는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성문제에 대해서는 해방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어느 정도 『남성화』되고 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따라서 여성의 성해방은 이같이 남성중심적이고 능률지향적인 1인 지배체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지배자의 기능이 군대화된 사회의 「섹스」구조에 대한 열쇠구실을 한다. 「섹스」의 대상선택은 지배자의 사상에 충실한 사람이면 된다.
이러한 허구는 감각적인 요소를 모조리 배제하고 모든 비판에서 초연한 사랑받는 대상으로서의 지배자의 이상화에 모태를 이룬다.
이 사랑받는 대상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군중심리와 자아분석』에서 지적했듯이 자아나 이상적인 자아의 대신 들어선다. 이를 통해 김일성과 그의 신화가 현실로 대두되는데 현실성의 검토는 배제된다.
암송교육과 김일성 연설의 암기는 바로 모든 사람이 자아와 동화시키는 인물의 특성과 고뇌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히스테리」적인 증상이다.
이러한 대중 「히스테리」의 형태는 수많은 종교적 사회에 늘 있는 일이다. 지배자에의 동화는 개인간의 친분 강화가능성을 현저하게 방해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나폴레옹」의 반혁명기』에서 「헤겔」에 관해 언급하며 모든 세계사적인 사건은 실제로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즉 하나는 비극 또 하나는 희극으로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희극이란 바로 이 신화의 창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건국신화란 것이 자연상태에서 문명단계로 접어드는 한민족의 집단적인 활력능력을 표현하는 것인데 김일성의 전기는 바로 이의 번안물과 마찬가지이다.
모든 신화의 현성과 단 한가지 일치되는 것은 『영웅신화의 허구는 영웅의 신격화로 결점을 이룬다』는 「프로이드」의 지적에서 찾을 수 있다. 적어도 신화면에서 본다면 김일성은 반은 영웅이고 반은 신이다. 그는 이러한 뜻에서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다.
북한사회에서의 대중조직과 이의 군대같은 조직형태, 27세까지의 이성관계 금지, 지배자에 대한 집중화 및 남성중심적인 능률지향성은 극단적으로 억눌린 잠재적 동성애 구조의 소지를 마련해준다. 그러나 이 사회의 사회주의적 조직은 절대로 가부장적이며 잠재적 동성애사회의 출현을 불가능하게 한다고 볼 수 있다.

<전래의 가족제 붕괴>
개인지배 아래서의 대중관계에 있어서는 「섹스」의 억압으로 필연적으로 형성되는 욕구불만에 따른 공격적 태도의 정화가 매우 중요해진다. 왜냐하면 김일성은 『자애로운 어버이』일 뿐더러 무엇보다도 당간부를 통해 통치하며 공격욕을 만들어내는 독재자이기 때문이다.
북한 어디서는 매일 고조돼 가고 있는 이 공격욕은 현재로서는 외부 즉 남한의 『해방』과 『미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으로 돌려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민중의 희생과 관련된 공격욕구의 해제란 다만 피의 상잔만을 생각케 한다.
민중의 불만을 해소시키는 또 하나의 가능성이란 압제로부터의 민중의 해방, 즉 북한 고유의 가부장적 구조의 해방이다.
이러한 혁명이 북한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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