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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 다움 이형국 동양화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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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천안시 원성동 작업실에서 만난 다움 이형국 화백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자기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일이라고 말했다. 강태우 기자

1996년 충남 미술대전 특선, 1997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을 시작으로 오랜 시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다움 이형국(49) 화백은 자신의 ‘호(號)’처럼 자신이 누구인가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비록, 풍요로운 삶은 아니지만 그림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 화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한국화를 전공한 이형국 화백은 어린 시절 그림을 곧잘 그린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림을 전공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던 이 화백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훗날 화가가 되기 위한 입시 준비를 하게 됐다. 이 화백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무렵 형태의 미학을 중요시하는 서양 미술 보다는 대상의 내면까지 표현해야 하는 동양 미술에 심취해 전공을 한국화로 선택했다. 당시 남들보다 늦었다는 생각에 이 화백은 더 열심히 그림을 그렸고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23살이 되던 해에는 40대에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장기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 계획 속에는 왕성한 작품활동과 대학 강단에서 후배들을 양성하는 일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아 계획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어쩌면 분에 넘치는 일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20년에 가까운 장기계획을 세울 때만 하더라도 뭐든 원하는 대로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지요. 대학 강단에 서고 싶었던 꿈은 3번 낙방하며 물거품이 되어버렸고 그림을 그려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 조차 힘에 부치는 일이었으니까요.”

 이 화백은 자신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이 흔들리는 것이 더 염려스러웠다. 더욱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지만 무일푼으로 살림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도 또 다른 두려움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고 보니 집에 앉아서 그림만 그릴수가 없었습니다. 졸업 후 조교 업무를 볼 때까지도 평생 그림만 그려도 먹고 살겠다고 생각했었는데 현실의 벽이 높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셈이죠.”

 결국 이 화백은 아내와의 상의 끝에 그림 그리는 것을 잠시 미뤄두고 대신 아이들을 가르치는 미술학원을 차렸다. 다행히 미술학원은 몇 년 동안 괜찮은 벌이가 됐고 규모도 점점 확대해 갈 수 있었다. 또 그림을 완전히 놓을 수 없었던 이 화백은 틈틈이 서예를 써내려 가며 그림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 하지만 서예를 한다고 해서 그리고 싶은 욕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화백은 대학 후배들을 만나기 위해 모교인 단국대학교를 방문했다가 그림에 대한 끝없는 자신의 욕구와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됐다.

 “미술학원을 차린 후 한 3년 동안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대학 후배들을 만난 후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잠시 그림을 미뤄둔 사이 그림의 스타일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더 늦어지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조금 힘들어도 하루 빨리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석사, 박사 과정을 밟게 됐죠.”

2011년 7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이형국 화백의 일곱번 째 개인전에 전시된 작품.

이후 이 화백은 본격적으로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고 단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20시간 이상 한 자리에 앉아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특히 전시회 일정이라도 잡힐 때면 3일 동안 하루 3~4시간의 짧은 수면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며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 결과 충남 미술대전이나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8번의 입선 및 특선의 자리에 올랐고 7번의 개인전을 갖기도 했다. 또 한국문인화협회 이사, 충남 지회장 등을 역임하며 미술인 활동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나에게 있어 그림이라는 것은 ‘나 다운 것을 찾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시 말해 지극히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호 역시 ‘다움’으로 지었습니다.”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붓을 든다는 이 화백은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그 세계가 내가 좋아하고 또 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스스로 다운 모습을 보다 빨리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움을 버렸을지 모르지만 나 다운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최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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