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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치적 양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닉슨」은 1일 상오 10시 전국 TV 연설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의 책임은 자신이 질 것이며, 어떤 조직에서도 하부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며 정상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선언했다. 「닉슨」의 이 선언은 「닉슨」의 정치적 양심이 살아 있음을 과시한 것이라 하겠다. 「닉슨」은 「홀드먼」「엘리크먼」 등 측근 보좌관과 「클라인딘스트」 법무장관의 사표를 수리하고 「딘」 3세 법률 고문을 해임한 뒤 신임 「리처드슨」 법무에게 사건 수사의 책임을 맡겼음을 아울러 발표했다.
이러한 조치는 궁지에 몰린 대통령이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서 인의 장막을 쳐 온 「캘리포니아」 파를 추방한 것으로 일종의 「트릭」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의 긍지를 버리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기자와 국민들에게 저자세로 호소했다는 것은 양심의 소치라고 하겠다.
미국에서 반대당 당사를 도청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 정치는 신사도에 의한 정치요, 「페어플레이」 정신에 의해 운영된다고 믿고 있는 미국 시민들에게 반대당 당사를 도청하고 선거 비용의 지출 명세를 숨기고 타인의 사무실에 침입하여 서류를 절취해서 증거로 삼는다는 것 등은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더티·플레이」로 지탄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를 묵인 내지 지시했다고 한다면 그 지위가 대통령이라도 결코 용인될 수 없는 것이다. 국민의 여론을 존중할 줄 아는 미국 정부가 대통령의 재선을 위하여 정치 도의를 무시한 행위를 하였다면 납득 될 수 없으며 이러한 독재적 비민주적 방법에 대하여 국민이 공분을 폭발시켰음은 당연한 일이다.
미국의 언론계나 연방 법원 판사들은 정치 도의를 바로 잡기 위하여 진상 규명에 노력하여 백악관의 관련성을 백일하에 폭로하여 「닉슨」을 사과케 한 것은 언론의 자유와 사법부의 독립을 실감케 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정치 도의가 실추되기는 했으나 일국의 대통령이 자기를 궁지에 몰아넣은 연방 판사들과 자유 언론의 공적을 치하했다는 사실도 미국 민주주의의 건재함을 실증한 것이라 하겠다.
막강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백악관의 3보좌관과 법무부장관이 언론을 탄압하지 않고, 법관 임명권을 남용하지 않고 스스로 물러났다는 점에 미국 민주정치의 강점이 있다고 하겠다.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하여 무한한 방법을 구사하지 못하게 하고 상대방과 대등한 수단만을 사용하게 하며, 자유 언론에 대통령을 비롯한 최고 참모까지도 추종하는 이러한 미덕은 미국에서도 일조일석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영국의 종교적 탄압에 저항하여 이주한 선조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언론 자유에 대한 신봉과 사법권의 독립에 대한 전국민의 지지가 민주정치의 도덕성을 유지해 온 것이다. 또 미국의 민주정치는 여론 정치요, 책임 정치라는 점에서 「트러키·닉슨」이라고 평을 받고 있던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의 책임을 자기가 지겠다고 나선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으나 용기 있는 일이기도 하다.
「워터게이트」 사건 때문에 실추된 미국의 위신이 「닉슨」 선언에 의하여 어느 정도 회복되어 새로운 대서양 헌장 등 외교 활동에 전념하게 된다면 미국을 위해서도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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