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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금동수정감장촛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신라고분을 발굴하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토기와 곡옥과 금귀고리. 그래서 이것들을 신라인의 대표적 상표라고 말한다. 이에 비하여 고려와 백제의 고분에는 대체로 의기가 부장되어 있다. 말하자면 제기류에 속하는 것들을 무덤 속에 넣음으로써 신라사람들이 생활의 일상품을 가지고 갔던 사실과는 매우 상반되는 것이다.
한국미술 2천년 전을 통해 비로소 공개된 금동수정감장촛대는 대체로 경주지방 출토의 통일신라 말기 유물로 추정하고있다.
그런데 일상적 생활도구를 부장하는 신라사람들의 습속에서 보면 이 촛대는 의기에 속할 뿐더러 너무도 진귀한 물건이란 점에서 고분부장품이 아닌 고사지의 출토물이 아닐까하는 견해도 없지 않다. 그것도 국찰이나 왕찰이 아니고는 비치할 수 없는 그런 고급인 물건이다.
혹자는 또 이것이 고려 초까지 연대를 내려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견을 제기하고 있는데 어쨌든 나말려 초의 제품이라 하더라도 극상의 호사스런 공예품임에 틀림이 없다.
청동으로 기본형을 주조해서 그 위에 도금을 두껍게 했다. 촛대받침과 2중의 화반은 6모의 연엽귀로 하고 6개의 발에는 석등 처마 끝과 같은 귀꽃 모양을 나타냈다. 두 화반의 전에는 당초무늬를 양각하고 또 점점이 타압문을 넣었으며 화판 복판마다 손톱만한 자수품을 6개 박았다.
연주형 간주와 간주받침에도 각각 콩알만한 백수정을 감입 장식하고 특히 초꽂이 부분에는 앙련의 조각이 두드러진 양각이려니와 수정마저 또한 더덕더덕 붙어있어서 도리어 머리가 무거운 느낌이다.
수정 알에는 특히 두개의 줄을 그은 것이 선연한데 이 점이 이 금동촛대를 한층 고격으로 보게 하는 것이다. 다만 호사와 장엄에 치우쳐 허식적인 물건이 돼버렸다는 것이 흠이라고 할까. 수정은 경주 토산의 수정을 깎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몇 토막의 부분품으로 주조해서 조립한 것이다. 옛 주조의 기법에는 세사주조·황토주조·요형주조·납형주조·골돌주조 등이 있는데 이 촛대처럼 정교한 조각을 새겨 넣으려면 밀랍으로 원형을 만들어 시새로 싸서 구운 뒤 쇳물을 부운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런 밀랍을 이용한 주물방법은 동양에서 일찍부터 개발되어 허다한 미술공예품을 남기고 있으며 특히 동종과 불상에 많이 적용시켰던 것 같다. 높이 약 35㎝. 권상하씨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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