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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림막으로 인터랙티브 아트로 중형 세단의 변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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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호 17면

브랜드와 예술가의 컬래버레이션은 거대한 흐름이다. 구두·가방 같은 패션 아이템은 물론이고 맥주·휴대전화·컴퓨터에까지 예술가의 손길이 닿아야 비로소 빛이 나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이번엔 자동차다. 미국 럭셔리 자동차의 대표 브랜드인 링컨은 새 중형 세단 ‘올-뉴 MKZ’의 출시를 기념해 국내 예술가와 손잡고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벌였다. 이른바 ‘리이매진 프로젝트(reimagine project)’다. 사진 조각가 권오상, 미디어아트 팀인 에브리웨어(방현우와 허윤실), 사진 작가 한성필이 여기에 참가했다. “국내에서 가장 새로운 시도를 하는 예술가들”이라는 게 브랜드 측이 밝힌 선정 이유다.

美 럭셔리 카 링컨과 예술의 만남

컬래버레이션을 했다길래 차의 외관을 바꾸는 것, 더 정확하게는 그림을 그리거나 장식을 더하는 정도를 생각했지만, 공개된 결과물은 그 이상이었다. 상품으로서의 차가 아닌 현실과 가상의 이미지를 오가는 수단으로 해석된 차는 조각으로, 거대한 가림막으로, 인터랙티브 아트로 변신했다. 이들의 작품전(16~29일)이 열리고 있는 서울 신사동 포드링컨 매장을 찾아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뒷얘기를 들어 봤다.

권오상(39) 홍익대 조소과 졸업. 동대학원 석사평면의 사진을 입체화시키는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가벼운 조각’을 모토로 브론즈·나무·석고 대신 압축 스티로폼 같은 신소재를 이용한다. 최근엔 잡지에서 오려낸 명품 시계나 보석 등을 스캔해 바닥에 세우고 이를 다시 사진으로 촬영하는 방식의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2012년 아라리오 갤러리 개인전, 2008년 맨체스터아트갤러리 개인전을 열었다. W·하퍼스바자 등 패션 잡지는 물론 영국 록밴드 킨(Keane) 앨범 재킷의 컬래버레이션도 진행했다.
권오상의 ‘MKZ’(2013), 255 x 150 x 50㎝, 사진인화지·금박·알루미늄 등

이번 작업의 테마는 ‘전통에서 창조하는 새로움’이었다. 링컨은 1917년 창립 이래(포드 모터 컴퍼니에 인수된 건 1922년) 미국의 최고급차, 대통령 전용차 제조업체로 명성을 날린 전통의 브랜드지만 그만큼 ‘오래된’ 이미지가 굳어져 있었다. 이에 대한 돌파구를 예술가들과의 협업에서 찾은 이유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특히 MKZ가 대상이 된 것은 ‘링컨=클래식’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난 첫 모델이기 때문이었다.

세 작가 팀은 MKZ를 2주간 시승해본 뒤 얻은 저마다의 영감을 작업으로 풀어냈다. 여러 각도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압축 스티로폼 형상에 오려 붙이는 ‘사진 조각’으로 유명한 권오상 작가는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입체와 평면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업 방식을 재현했다. 차의 로고는 물론 알루미늄 휠, 1938년 링컨 자동차의 K-엠블럼, 1942년 링컨 콘티넨털의 엔진 부품까지 1930년대부터 지금까지 링컨의 역사를 상징하는 사진들을 스캔해 하나하나씩 알루미늄 틀에 붙이고 플라스틱으로 여러 번 코팅한 뒤 금박으로 마무리했다. 그렇게 만든 100여 개의 조각들을 다시 콜라주처럼 합쳐 천장에 매다는 하나의 부조 작품으로 완성했다. 이는 입체(원래 차)가 평면(인터넷 사진 이미지)으로, 그리고 다시 입체(작품)로 변하는 시도였다.

권 작가는 “차를 탔을 때 느꼈던 쾌적함과 안락함이 어디에서부터 나왔을까를 생각해보다 과거 모델들을 연구하게 됐다”면서 “미국과 소련 사이의 우주개발 경쟁 때문인지 차체 뒷부분에 날개를 달아 날아갈 것 같은 디자인을 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고, 이를 작품 실루엣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에브리웨어(방현우·35, 허윤실·34) 서울대에서 각각 기계공학과 디자인을 전공한 부부 작가가 2007년 결성한 팀. 디지털 기술과 신체의 인터랙션을 중심으로 한 미디어 아트를 주로 선보이고 있다. 모래를 젖히는 순간 생명체가 살아나는 이미지가 생성되는 ‘Oasis’, 손을 대면 천에 물감이 퍼져나가는 ‘Soak’ 등이 최근작이다. 2008년과 2011년 SIGGRAPH 아트 갤러리를 비롯해 Ars Electronica Center(오스트리아), 도쿄국립미술관(일본),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영국) 등과 여러 뉴미디어 축제에서 활동하고 있다.
에브리웨어의 ‘Cloud Pink’(2013), 가변, 천·프로젝터·컴퓨터

테크놀로지로 예술을 실현해 가는 에브리웨어 팀은 시승을 하면서 MKZ의 선루프에 주목했다. 가로·세로 1.41㎡나 되는 선루프를 올려다 보며 기존 차들과 다른 시야가 펼쳐질 수 있으리라는 아이디어를 찾았다. 그중에서도 어릴 적 동산에 누워 손을 뻗어 하늘의 구름을 잡고 싶어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일단 구름을 모티브로 택했고,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밟는 강도에 따라 컴퓨터가 그려내는 다양한 모양의 구름들이 연출되도록 구상했다. 단,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선루프 자체를 화면으로 이용하기보다는 선루프 위로부터 차체 뒤까지 이어지는, 가로 3.5m 세로 4m 사이즈의 흰색 스판덱스 천을 설치했다. 마치 수퍼맨이 날아가는 듯한 형상으로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이 시야에 꽉 차도록 설계한 것이다.

특이했던 점은 구름의 색깔이었다. 통념적인 파란 하늘에 흰색 구름이 아니라 흰색 천 위에는 짙은 핑크와 오렌지 빛이 오묘하게 섞여 움직였다. 방 작가와 허 작가의 설명은 이랬다.

“요즘도 주변에서 많이 듣는 질문이 ‘너네는 뭐 하니’다. 작가냐, 엔지니어냐, 디자이너냐 그렇게 묻는데 우리 일이 딱히 그건 아니다. 그럼 사람들은 ‘뜬구름 잡는구나’라며 웃는다. 우리 머릿속의 구름은 일종의 판타지라고나 할까. 그리고 판타지가 가득한 세상이라면 구름은 당연히 핑크일 수밖에 없을 거라 상상했다.”

한성필(41) 중앙대 사진학과 졸업. 런던 킹스턴대학과 디자인뮤지엄의 공동프로그램인 ‘큐레이팅 컨템포러리 디자인’ 석사 과정 졸업. 가림막이라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지점을 만들고 사진으로 찍어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2004년부터 2년간 세계 문화재 복원 공사장의 가림막을 대상으로 한 ‘파사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한편 2009년엔 공간 사옥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듯한 3차원 가림막을 설치했다. 아르헨티나 국립미술관, 기요사토 사진박물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한성필의 ‘Illusion reality with Lincoln’(2013), 31.6 x 23.25 m, 포드링컨 신사전시장 외관 패브릭 래핑 설치

공사장의 가림막이나 벽화를 찍고 또 스스로 설치하는 작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성필 작가는 이번엔 서울 링컨 매장의 전경을 바꿔놓았다. 강남 한복판, 도산공원 사거리에 과거의 공간이 들어선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현실화시켰다. “강남이라는 데가 30~40년 전만 해도 논밭이었는데 지금은 가장 번화하고 가장 현대적인 곳이 됐다. 그렇다면 만약 지금 여기에 옛날 장터 같은 풍경이 연출된다면 사람들은 어떤 충격을 얻을까 궁금했다.”

그는 이런 상상력으로 마치 아날로그로의 회귀처럼, 특정 시대나 장소는 아니지만 아련한 추억이 느껴지는 가상의 장면을 만들어냈고, 건물을 약 가로 32m, 세로 23m라는 거대한 천으로 감쌌다.

하지만 가림막은 설치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건물 외벽이 유리이기 때문에 작품 설치를 위한 거치대를 따로 만들어야 했고, 현수막처럼 펄럭거리지 않으려면 적당하게 팽팽해질 수 있도록 탄성을 정확히 맞춰야 했다. 위치가 빌딩 숲이라 때때로 골바람이 생기는 변화도 견뎌내야 했다. “기술적인 부분도 부분이지만 이건 밖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일종의 공공영역 아닌가. 어쩌면 전시장 안의 이야기를 밖으로 끌어내는 의미도 있다.”

링컨의 ‘리이매진 프로젝트’는 국내에선 이번이 처음이지만 해외에서는 익히 알려져 있는 행사다. ‘다양한 분야에서 앞서가는 창조자’들을 발굴하고 대중에게 알린다는 취지로, 기발한 아이디어의 소유자들을 지원한다. 쓰레기 자원을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선보였던 디자이너 아우로라(Aurora), 운동 에너지와 지구 질량에 따라 연주되는 악기를 고안한 앤디 카바토르타(Andy Cavatorta) 등이 대표적인 수혜자들이다. 국내 프로젝트에 참가한 작가들 역시 전시기간 중인 20일 작품에 대해 보다 자세한 설명을 해주는 마스터 클래스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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