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진 첫 여성 검사장 "24년 검사 생활, 병으로 몸무게 30㎏대 돼도 버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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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수로 65년. 국내에 검찰 조직이 생겨난 1948년 이후 첫 여성 검사장이 탄생하기까지 걸린 기간이다. 지난 19일 발표된 검사장급 이상 간부 인사에서 조희진(51·사법연수원 19기·사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여검사로는 처음으로 검사장급인 서울고검 차장검사에 발탁됐다. 전국 1909명의 검사 가운데 49명뿐인 검사장급은 일선 검사들이 선망하는 자리로, ‘검찰의 꽃’으로 불린다.

 조 신임 검사장은 20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20여 년 전 첫아이를 낳고 건강이 극도로 나빠져 몇 개월간 수술과 입원을 반복했다”며 “이후 수년간 투병생활을 했고 몸무게가 30㎏대로 떨어져 검찰을 떠날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고 털어놨다. ‘직장맘’으로서 출산·육아·가사 등 가정생활과 검사로서의 업무를 병행해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밝히면서다. 이 밖에도 24년 검사로 일하면서 위기의 순간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물러나기엔 아쉬움이 너무 컸고 고비 때마다 남편(송수근 문화체육관광부 국장)과 가족, 선후배들이 격려하고 다독여줘 버텨낼 수 있었다. 고진감래(苦盡甘來·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말이 생각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처음 검사로 임용됐을 때보다 더욱 기쁘다. 젊은 시절엔 열정이 앞섰지만 오랜 기간 검찰에서 일하면서 여성 검사의 위상과 존재감을 보여주고 후배들에게 비전을 심어줬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검찰에 여검사가 처음 등장한 건 1982년이다. 연수원 12기로 임관한 조배숙·박숙경 변호사가 주인공이지만 여성 검사장 1호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조 검사장은 달랐다.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89년 검사로 임관한 그에겐 ‘여성 1호’란 수식어가 해를 거듭할수록 추가됐다. 법무부 과장(여성정책담당관, 98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공판2부·형사7부장, 2007~2008년), 차장(고양지청, 2009년), 지청장(천안지청, 2010년) 등 그가 거친 길은 모두 여검사로선 처음 지나는 길이었다. 조 검사장은 “당시엔 여성 검사가 나 혼자라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남자 검사에 비해) 배려를 받은 부분도 적지 않다”며 “여검사들에겐 여성이 더 많아진 요즘이 오히려 더 힘들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유는 ‘여검사의 숫자가 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남성 중심적 검찰 문화 속에서 배려받는 소수가 아닌 똑같은 구성원으로서 전문 분야를 개척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실제로 여성 검사는 1989년 이후 해마다 늘어 현재 전체 검사의 25%를 차지한다(그래픽 참조). 과거 주로 여성, 청소년 분야만 담당했지만 요즘 들어선 특수·공안·금융 등 인지수사부서 진출도 눈에 띄게 늘었다.

 조 검사장의 승진이 쉽게 이뤄진 건 아니다. 연수원 동기 중 선두주자들은 2년 전, 나머지 동기들은 올해 초 승진했지만 그는 명단에 들지 못했다. 두 차례나 ‘물을 먹은’ 거였다. 사표도 썼으나 주변에서 만류했다.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여검사들 전부의 일이니 기다리자”고 했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정부가 출범해 첫 여성 대통령 시대가 열렸다. 여성 검사장 탄생의 분위기도 무르익었다. 여성 변호사회와 조윤선 여성부 장관도 힘을 보탰다. 조 장관은 틈나는 대로 여성 검사장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가장 기억나는 사건으로 지난해 서울고검 검사로서 처리했던 필리핀 여성의 한국 유흥업소 업주 고소 사건을 꼽았다. 가수활동을 하려고 유흥비자를 받아 입국한 필리핀 여성이 성매매를 강요당했다며 업주를 고소했다가 무혐의 처분이 내려지자 항고한 사건이었다. 조 검사장은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며 인권단체 등이 ‘국제적 인신매매’라고까지 비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업주를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올 들어 법무연수원으로 옮겨선 관련 세미나를 열어 “외국인 피해 여성들도 형법상 인신매매죄의 보호 대상에 포함시키자”고 주장했다. 현재 법무부는 관련 법안 마련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여검사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결국 여검사들도 자신의 전공 분야를 잘 선택해 집중력과 전문성으로 승부해야 남자 검사들과의 경쟁에서 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

 조 검사장은 앞으로의 포부를 묻자 “검사로 정년퇴임하는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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