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힐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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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월남전은 종전과 함께 『하노이·힐튼』(Hanoi Hilton)이라는 속어를 하나 남겨놓았다. 「힐튼」이라면 세계유명도시들에 우뚝 서 있는 호화판 「호텔」의 이름. 물론 월맹의 「하노이」에 그런 「부르좌」 「호텔」이 있을리 없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월맹의미군포로 수용소를 뜻하는 별명이다. 포로들 자신이 익살맞게 그런 이름을 붙여 놓았다.
이제 마지막 포로들이 석방되자, 그 어둡고 괴로왔던 암흑생활들이 한겹씩 벗겨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미국당국은 월맹에 남아있는 포로들의 안전을 위해 그런 사실들을 덮어두었었다. 근착 미군간지 「뉴스위크」엔 그것들이 단편적으로 소개되어있다.
포로생활은 우선 투석 행렬로부터 시작된다는 그들은 「지프」나 「트럭」에 실려 월맹군중들에게 전시된다. 이때에 군중들 사이에선 돌이 날아오는 등 말할 수 없는 조롱과 경멸을 그들은 받아야 했다.
보통 10명씩 묶여 한방에 갇혀 있었다. 심한 경우는 9감방「피트」짜리 감방에 혼자 격려되는 수도 있었다. 어떤 포로는 차가운 「콘크리트」바닥에 꿇어앉은 채 며칠을 견디어야 했다. 나중엔 무릎이 풍선처럼 부어 올랐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밧줄로 매를 맞는 것은 보통이며, 어떤 포로는 20일 동안을 꼬박 의자에 앉아 있는 고문을 당했다
이런 고통들은 전향과 함께 덜어 버릴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도 적지 않다. 전범자백서에 서명하고 또 반전방송을 하고, 「닉슨」대통령을 비난하는 성명에 동조하는 일들이 그런 예이다.
한국 동란에서 포로가 된 미국들도 그와 비슷한 곤욕을 치렀다. 「세뇌」(braim washing)가 강요된 것이다. 실제로 그런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세뇌된 병사들도 없지 않았다.
「세뇌」나 「전향」등은 서구인들의 사고방식으론 그렇게 심각한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그런 포로들이 나중에 두려움 없이 석방되어 귀환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월남전 포로들 중에서도 동조자(?) 들이 다들 돌아왔다. 또 국방성당국도 군법회의에 기소하지 않을 것을 시사하고 있다. 정상을 동이하고 관대하게 이해하는 태도이다.
그러나 많은 포로들은 묵묵히 인내하며 온갖 고초들을 극복하고 돌아 왔다. 이것은 여유 있는 인생관이라 할까, 「유머」감각이랄까…아무튼 서구인의 특유의 태도이다. 사실 그들은 월맹군 앞에서나, 자신들만의 공동생활에서 언제나 팽팽하고 각박하기보다는 느긋하고 낙천적인 언행으로 어두운 날을 보냈다. 「하노이·힐튼」이라는 「슬랭」(속어)도그래서 생겼다. 자전거도 「체이」이 팽팽하면 달리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세상살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고난을 극복하는 태도야말로 인간답고 장쾌한 인생 「심퍼니」를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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