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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4)<제31화>내가아는 박헌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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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변호사사임 소동>
세칭 조선공산당사건의 두번째 공판은 l927년9월15일에 열렸다. 14일에 억수로 퍼붓던비가 밤11시쯤 멎기시작하자 법원에는 방청권을 얻으려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상오0시30분 법원직원이 나와 방청권80장을 나눠 주었다.
방청권을 얻지못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밤새도록 서성대면서 아침에 피고들이 출정하는 모습만 바라보았다.
이날도 재판정에는 종로서정사복경관 20여명이 일반방청석을 경계했다. 또 특별방청석에는 여전히 10여명이 나와 있었고 그중에는 육군군복에 긴칼을 찬 헌병대원까지 끼여있었다. 상오10시20분 시본재판장이하 전원의 입정이 끝나자 재판장은 공판의 속행을 선언했다.
그러나 개정하자마자 일본인 고옥변호사가 재판장에게 『법정밖의 경계는 전일보다 많이 해제되었으나 법정안에는 여전히 다수 경관이 들어서서 피고들에게 일종의 정신적 위압을 줄뿐아니라 육체상에도 다대한 영향이 있어 자유로운 공술을 하기어려운 상태이다. 재판장은 이점에대해 반성해주기 바란다.
어제 피고80명을 면회한 즉 그 대부분이 경찰서에서 고문을 당했다고 하는데 그 사실여부는 모르거니와 다수한 경관이들어 서있는 법정에서 피폐한 피고들이 어찌 자유롭게 공술할수 있겠는가』면서 열변을 토했다. 이어 김병노 강세학 이인등이 차례로 경계해제, 방청절대공개, 병중피고의 보석문제를 들고나서 열변을 전개해 공판정은 토론장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재판장은 법정안 경계에대해 앞으로 고려하겠다고 말할뿐 그대로 공판을 계속하려고 했다.
이때 피고석에서 박헌영이 벌떡 일어섰다. 수척한 모습의 박은 재판장을 노려보며 피고를 대표해서 말한다면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를 많은 경관으로 이같이 위압하는것은 전무산대중을 위압하는 반증이다. 만약 재판장이 이 경계를 해제치 아니하고 일반방청을 허락치 않을때에는 우리는 변호사도 사실심리도 필요없다. 차라리 재판장이 하루나 이틀동안에 너는 징역얼마, 너는 징역얼마라고 즉결 언두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해 법정안의 분위기는 자못 험악해졌다.
재판장은 공판진행에대한 논의를해야 겠다면서 합의실로 들어갔다가 잠시후에 다시나와 『이공판은 공안에 방해가 될염려가있어 방청을 금지한다』고 선언했다.
재판부가 방청을 금지하는 이유는 사실심리에 들어감에따라 피고들의 진술내용이 사상문제를 건드리게되고 사상에대한 진술은 일반방청객에게 선전적인 영향을 주기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변호사 김태영은 방청금지의 정도를 따져 물었다. 재판장은 특별방청은 허가하고 일반방청을 금지한다고 말했다. 변호사들은 흥분했다. 김병노는 『변호사가 하는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면 우리는 전부 퇴정하겠다』고 말하자 변호사들은 일제히 퇴정했다. 재판장은 휴게를 선언했고 일반방청객은 법정에서 몰려나 경관들에게 쫓겨 법원밖으로 밀려났다.
공판은 장미검사 의 중재로 경사복경관을 절대로 입정시키지않는다는 조건으로 이날하오다시 열렸다.
9월17일 3일째 공판이 열렸으나 일반방청을 금지했기때문애 수십명의 경관이 법원을 둘러싸고 일반의 접근을 막았다. 그리고 부근에서 서성거리는사람들을 닥치는대로 검문하고 해산시켰다. 박일병의 노부 박형노(69)은 함북 수성에서 아들의 재판을보러 이날 상경해 법정부근에 있다가 경관에게 폭행까지 당했다.
경계경관 박을 나가라고 하자 그는 『내가 철망안에 들어서지도않고 아들의 자동차타는 꼴이나 한번 보려고하는데 왜나가라고하느냐』고 항의했다. 정북경관은 그를 구내 유치장으로 끌고가 마구 두들겼다.
이런가운데 법정에서는 공판이 진행되고있었다. 그런데 피고석 맨뒷자리에 종로서 김면규경부보란 자가 앉아서 심리내용을 일일이 필기하고 있었다. 이때 박헌영은 여기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박은 자기의 진술차례가되자 경관이 필기하고 있기때문에 진술을 못하겠다고 버텼다.
박헌영은 이후 나흘째공판에서 소동을 벌인후 5일째부터는 출정을 하지않았지만 변호사들이 『공개금지된 심리내용을 경관이 필기해 경찰서에 보고하니 방청금지의 의의가 무엇이냐』고 항의해 중야검사와 종로서 삼로경부가 숙의를 거듭하고 공판이 하오2시가 넘어 개정이되는 사태까지 빚기도했다.
그러나 23일에열린 6일째공판날에도 김경부보는 사복을 갈아입고 특별방청석에 또 나타났다. 변호사들은 이날하오 공판을 거부하고 이와같은 행위는 사법권의 침해라고보고 특별방청석에서 경관이 물러갈때까지 변호를 거절하기로했다.
변호사들은 그닐밤 인사동 최진변호사집에 모여 각자 자유의사로 변호인을 사임하고 사법권침해문제를 법원과 법무당국에 따지기로 했다. 이리하여 28일에는 변호사 이승우 김태영 권승렬 한국종 김찬영 최진 김용무등 7명이, 29일에는 정구영 이 인 심상붕 강세학 허 혜 한상억등 6명이 변호인을 사임했다.
29일상오 개정될 예정이었던 공판은 변호인이 한명도 입회하지않아 재판이 이루어지지않았다. 재판장은 피고를 서예심정에 한사람씩 불러 변호인을불러내 공판을 진행하자고 설득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이문제는 결국 장미검사장이 31일 중재에나서 재판장이 이후부터 어떠한 경우에도 경관의 특별방청을 금지한다고 언명함으로써 변호사들의 승리로 끝났다. 이미 사임했던 변호사들은 다시 계출을하고 공판은 계속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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