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교육 제도적 개선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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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무용교육의 제도적 모순에 관해서는 이미 관계인사들이 여러 차례 거론한바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무용교육의 불합리성은 시정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더 암담해져 가는 실정이다.
종전까지 중·고등학교에서의 무용교육은 예능과목으로서가 아니라, 체육과목 속에 예속되어 체육의 3분의1 정도의 비중으로 배정되어 왔다. 이것부터가 모순이 된다.
무용은 원칙적으로 다른 예능교육, 말하자면 미술이나 음악 등과 같이 독자적인 예술영역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이나 음악은 독자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면서 유독 무용만이 그렇게 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당국의 대답은 언제나 『현재 우리 나라의 교육제도상 불가피한 문제』로 되어있다.
그런데 과거 체육시간의 3분의1밖에 배정 받지 못하던 무용이 지금은 그 10분의1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중·고등학교에서의 무용교사가 위축되고 있음은 물론 그 자질향상은 더욱 기대하기 힘들게 되었다.
이러한 현장은 직접 대학의 무용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용과 학생은 체육을 부전공으로 선택해야 만이 교사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무용의 체육과 예속, 무용시간의 감소 등으로 파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는 무용예술의 존재의의 자체를 위협 당하는 것이므로 무용계로서는 그대로 좌시만 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무용교육은 애초부터 다른 예능 분야와는 달리 그 교육적 의의가 희박하다는 것인가? 무용이란 쓸모가 없는 예술이란 말인가? 무용을 수단으로 해서 인간의 인격형성에 필요한 정서적 감각을 배양시키려는 목적은, 미술이나 음악 등 다른 예능분야의 그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오히려 무용교육은 아동들의 정서발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예능과목이다. 사회와의 연계가 없는 대학 무용과에 생명이 있을 리 없다. 계발을 앞두고 타진해야할 무용이 학문적인 바탕에서 밀린다는 것은 무용계가 영원히 제 길을 놓쳐버리는 불행한 일이다.
이토록 정진의 여건을 끊어 놓고도 정부는 문화의 사절로서 무용을 앞세운다. 국위선양을 전담해오다시피 한 무용이 학문과는 상관이 없단 말인가? 이토록 무용계와 대학의 무용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학교무용의 제도적 개선은 단순히 관계인사나 기관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국민교육의 보다 높고 큰 이념에도 부응하기 위하여 이 문제는 한시바삐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병임<무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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