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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 선방, 그곳에선 어떤 깨달음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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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창재 감독

베일에 싸였던 비구니 선방(禪房) 풍경을 속속들이 담아 큰 반향을 불렀던 다큐멘터리 영화 ‘길 위에서’가 단행본으로 묶였다. 감독 이창재(46·중앙대 영상대학원 교수)씨가 필름으로 못다한 얘기를 펜으로 정리했다. 동명의 에세이집 『길 위에서』(북라이프)다.

 영화는 경북 영천의 비구니 도량 백흥암을 여러 달 동안 밀착 취재했다. 삭발·수계·울력(運力·공동노동) 등 스님의 일상은 물론 수행이 벽에 부닥치자 한밤에 통곡하는 장면 등 고통과 상처의 기록도 담았다.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거나 출가를 동경하는 관객 5만 명이 영화를 관람했다.

 지난 15일 이씨를 만났다. 책에서도 털어놓지 못한 선방 얘기, 같은 소재를 매체(영화·책)를 달리해 제작한 소감 등을 들었다.

 -책을 낸 계기는.

 “책 쓸 생각도, 자신도 없었다. 영화를 위해 찍은 전체 분량이 100시간이 넘는다. 그 안의 말을 문서로 정리하니 A4 용지로 800쪽이 나왔다. 그걸 본 출판사 편집자가 영화에 나온 얘기를 빼고도 책 두 권을 만들 수 있겠다고 하더라. 영화에 나온 에피소드들을 책으로 소개하되 시간 제약 때문에 못 전한 부분을 많이 집어넣기로 했다. 정서과잉을 피하기 위해 사실 위주로 썼다.”

 -영화와 책의 다른 점은.

 “영화는 작품이고 책은 저널(일기)인 것 같다. 영화는 미학적 완성도에 집착해 프레임마다 신경 쓰게 된다. 또 시간 단축을 위해 대표적인 장면만 소개하다 보니 내용이 평면적이다. 반면 책은 사건의 본질이 뭔지 자꾸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보다 입체적이다. 영화 편집에 5개월, 책 쓰는 데 5개월 걸렸다. 절을 두 번 다녀온 느낌이다.”

스님들은 잠 안자고 수행하는 안거가 끝나면 세속에 나가 수행하는 만행을 떠난다. 동진 출가(어려서 출가)한 선우 스님이 은사인 무진 스님 등과 지리산 둘레길로 만행을 떠난 다큐멘터리 영화 '길 위에서' 속의 한 장면이다. [사진 백두대간]

 -몇 달간 스님들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사람들은 생활에 휘둘려 자신을 살피는 일은 뒷전이다. 스님들은 자기 성찰 7, 생활 3 정도로 시간을 쓰는 것 같았다. 끊임 없이 마음을 다스리는 데 집중했다. 반면 나는 자기성찰에 0.5 정도나 할애할까. 삶의 의미나 보람을 생각하면 출가자의 삶이 나아 보였다. 20대 초반 막연하게 출가를 망설인 적이 있다. 30대 중반에만 이 영화를 찍었어도 출가했을 것 같다.”

 -타성에 빠지는 스님은 없었나.

 “지독하게 수행한 분일수록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심하게 흔들린다고 한다. 선방 풍토도 문제인 것 같다. 체계적인 지도보다 스스로 내면의 부처를 끌어내는 데 집중하다 보니 공부가 어디까지 됐는지 모르겠다는 스님들이 있었다. 한국 불교는 단숨에 깨닫기를 요구하는 ‘특별반’이라고 하더라.”

 -다음 작품 계획은.

 “죽음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죽음은 언젠가는 다가올 가장 확실한 미래다. 죽음을 직시하면 삶을 완전히 달리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타계한 이성규 다큐 감독의 마지막을 영상에 담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죽음을 깨우칠 수 있도록 시신을 기증하듯 죽음의 과정을 기증하겠다고 하더라.”

신준봉 기자

◆백흥암=경북 영천 은해사의 말사다. 신라 경문왕 때 지어졌다. 주변에 잣나무가 많아 백지사(柏旨寺)로 불렸다. 비구니 스님만을 위한 수행처로 1년에 두 차례, 초파일과 백중날(음력 7월 15일)에만 일반에 공개된다. 회주인 육문 스님이 1980년대 초 우연히 절을 찾았다가 지금의 비구니 수행 도량으로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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