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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한산한 세계최대 인구도시|자전거 많고 여자는 바지차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다음은 「로스앤젤레스·타임스」지의 「로마」지 국장 「윌리엄·투오히」기자가 최근 중공여행에서 돌아와 쓴 상해「스케치」기사이다.-편집자주>
소란한 항구도시 상해는 근년에 「뉴요크」와 동경을 앞질러 세계최대인구의 도시가 되었다. 인구1천81만.
『우리는 다른 나라 대도시와 같은 교통문제가 없읍니다.』한 시 직원의 설명이다.『노동자들은 「버스」를 타거나 자전거를 이용하지요. 자동차 홍수 같은 것은 없읍니다. 그리고1백%완전 고용입니다. 실업자가 없지요.』
최근의 주택건립사업이 끝나 옛 빈민굴은 완전히 일소되었다고 한다. 「슬럼」가에 거주하던 약1백만의 노동자들이 시 변두리에 신축한 「매머드·빌딩」에 옮겨 산다는 것.
상해에 자가용차란 것은 없다. 몇 대의 관용「리무진」과 국가소유의「택시」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거리는 요금2「센트」인 「트틀리·버스」뿐 비교적 한산하다. 교통정리는 푸른 제복에 흰색완장을 찬 순경과 여순경들이 담당한다. 신호등은 교통순경이 수동으로 조작한다.
지나는 차들은 별로 없지만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버스」운전사들은 경적을 요란히 울린다.
1949년의 혁명 전에 상해는 범죄의 도시였다.
그러나 오늘의 상해는 활력에 가득 차있다. 다만 단조롭고 색채가 없을 뿐.
강 안에 늘어선 큰 「빌딩」들은 「페인트」칠을 안 해 황보 강물 빛처럼 회색이다.
상해에는 한 때 매음부들이 25만이나 들끓었었다. 지금은 한 명도 없다고 관리들은 주장한다.
여자들은「스커트」를 입지 않고 남자바지 같은 통바지를 입는다.
옆이 터진 「스커트」차림의 요염한 미희들이 사라진 오늘 외국인 선창들은 조용한 선원「클럽」에서 무료하게 맥주만 마신다.
강안에 회색의 큰「빌딩」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이 거리도 많이 변모했다. 우선 초대총통이었던 손우의 이름을 따서 거리 이름이 개명됐다.
옛 상해은행, 「홍콩」은행은 현재 상해혁명위원회본부가 되었고 기타 행정관서 들이 몰려있다.
혁명 위 본부밖에는 자동소총으로 무강한 인민해방군병사2명이 경비하고 있다. 세관건물 시계탑의「차임·벨」소리도 바뀌었다. 한 주민은『옛「차임·벨」소리는 너무나 이국적인 소리 같기 때문이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옛 미국 영사관은 현재 한 가내 공장이 들어서 있다.
그러나 「난징」로는 여전히 주요한「쇼핑·센터」이다. 예전처럼 흥청거리진 않지만 중공 제 각종 상품이 골고루 진열되어있다. 백화점의 상품 중 고급 자전거 1대에 약 65「달러」. 1대에1백25「달러」하는 「텔리비젼·세트」를 빼고는 가장 비싼 것으로 모든 사람이 선망하는 상품이다.
다른 상품 값을 미화로 환산해보면 「라디오」는20「달러」, 탁상시계5「달러」,만년필 7O「센트」,남자용「팬티」5「달러」,남자구두 6「달러」,「브러지어」40「센트」등이다.
관광안내원 같은 「화이트·칼러」노동자의 월봉은 약 35「달러」. 그러나 큰방 3개 짜리 「아파트」의 월세가 4「달러」밖에 안 되고 생활비가 싼 면이기 때문에 저축도 가능하다고 한다.
모든 노동자들은 무상으로 의료혜택을 받는다.
1주일에 하루씩 쉬는 날이 있으나 장기휴가는 없다. 단지 「메이·데이」,10월1일 국민절, 신정·분정은 휴일이 된다. 여가에는 「스포츠」·독서를 즐기거나 공원 또는 동물원을 찾는 것이 보통이다.
상해 시는 9개의 주요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곳마다「쇼핑·센터」와 극장이 있다. 시 혁명위원회 밑에 9개의 구역혁명 위가 있고 그 아래 다시 동네별 혁명위로 세분되어 있다.
1천여 만 명의 상해인구를 먹여 살리는 것은 상해를 둘러싸고 있는 1백97개의 농촌인민공사.
이곳에서 매일3만t의 식량을 들여온다.
상해에서 범죄가 골칫거리가 되던 것은 옛말이란 것이 주민들의 얘기다. 그것은 당 주석 모택동의 가르침에 따라 바르게 살려는 중국인들의 태도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웃에 대해 속속들이 알 수 있게 되어있는 획일 사회에서 개인적 이익을 위해 범죄를 행한다는 것이 어려울 것이란 점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한 상해시민은 『범죄가 아주 없을 수는 없지요. 그렇지만 극히 드뭅니다. 혁명 후에 우리의 도덕관은 전혀 달라졌답니다.』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상해를 방문하는 나그네들에게 「호텔」생활은 1급이다. 방들도 안락하고 「서비스」도 훌륭하다. 도둑맞았다는 얘기는 전혀 들을 수 없고 그 부담스런「팁」이란 것도 필요 없다. 단지 유감이라면 「바」가 없고, 중공 제 맥주와 기타 중공 제 술밖에 마실 수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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