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4원칙의 폐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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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7일 일본국제무역촉진협회는 1970년 4월 이내 3년간 실시해 온 소위 「주은내4원칙」이 폐기됐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고 선언했다.
주4원칙이란 1970년 4월15일 중공 수상 주은내가 일·중 우호 무역 7개 단체 대표들에게 대중공 무역의 전제로 제기한 네 가지 조건들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중공은 일본의 기업 중 대만의 대륙 침공이나 북한 침공을 원조하는 기업, 대만과 한국에 다액의 자본을 투입하고 있는 기업, 무기나 탄약을 제공함으로써 미국의 인지 전쟁을 돕고 있는 기업, 그리고 일본에 있는 미·일 합판 기업 및 미국의 자회사와는 상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주4원칙」은 미·일이 중공과 적대 관계에 놓여 있고 중공이 대만 영유를 주장하고, 북한을 보호하여 인지 전쟁에 있어서 「하노이」측을 도와주고 있던 당시, 일본 자본주의의 중국 대륙 진출을 인정하는 대가로서 붙어졌던 전제조건이다. 따라서 일·중공이 이미 국교를 정상화했고, 미·중공이 국교 정상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벌이고 있으며, 인지 전쟁의 휴전이 성립된 오늘의 국제 정세하에서는 「주4원칙」의 지적이란 명백히 무의미해진 것이다.
특히 작년 9월말 일·중공간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지면서부터 「주4원칙」은 사실상 사문화한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되었다. 이번 일본국제무역촉진협회가 중공이 대일 무역에 관한 「주4원칙」을 폐기했다고 공식으로 선언한 것은 이 기정 사실을 명백히 확인한 데 지나지 않는다.
「주4원칙」의 적용으로 말미암아 중공과의 상거래가 유한하다고 만만한 일본의 대기업과 대상사들은 한국이나 대만에 대한 상거래나 투자를 일시 중단했었고, 이로 말미암아 한국이나 대만의 경제는 약간의 영향을 받아 왔었다. 그러므로 「주4원칙」의 폐기는 주4원칙 때문에 한국·대만에 대한 상거래 및 투자를 중단해 오던 일본의 기업체 및 상사들의 한국에 대한 진출을 또 다시 활발케 할 것이다. 그러나 대만에 관한 한, 대만은 일본과의 국교 단절을 계기로 일본의 상품이나 자본의 유입을 스스로 거부하고 있는 형편이므로 「주4원칙」의 폐기가 당장에 경제적으로 어떤 변화를 촉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난 2월 「키신저」-주은내 회담을 계기로 중공은 한국과 대만에 대한 적대 정책을 점차로 수화할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 두 지역에 미군이 계속 주둔하는 것이 대소 전략과 관련하여 중공의 안전 보장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중공 수뇌측이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공이 한국이나 대만에서 미군이 당장에 철수할 것을 강력히 원치 않고 또 미국과 불완전한 형식이나마 국교를 개시키로 합의한 이상, 한국과 대만을 적극적으로 적대시해야 할 이유는 희박해진 것이다.
이런 각도에서 볼 때 「주4원칙」의 폐기는 경제적 의의보다도 정치적 의의가 더 큰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우리로서는 「주4원칙」이 폐기되면서 일본 자본주의의 한국 진출도 활발해지겠지만 그 대신 일-북한간의 경제 교류가 공개적으로 촉구될 가능성이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주4원칙」이 폐기됨으로써 일본의 대한 경제 진출이 새 단계에 접어든다는 점을 인식하고 좀더 합리적인 외자 도입 체제를 수립함과 동시에 일본의 대북한 경제 진출을 예의 주목치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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