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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정당적 정치 전환|여의 3·8개편 후의 새 전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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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치의 모습이 전혀 달라지게 됐다. 정당의 정치도 달라지게 되고 국회의 풍토도 달라지게 됐다.
정당도 아니고 단순한 원내 교섭 단체에 머무르지도 않을 유신 정우회가 탄생케 됨으로써 정치는 헌법이나 국회법개정이 가져온 것 못지 않게 크게 변화하게 된 것이다.
10·17이후의 정치 동안을 거친 뒤 정당제가 부활됐을 때 「정치 내적」인 면에서 「유신적인 것」을 그다지 실감할 수 없었다. 73명 추천「케이스」의 지명이 있은 후까지 그러했다.
그러던 것이 공화당에서의 29의원 탈당, 당 요직 인선이 단행된 3윌8일의 여당 진영 개편으로 실로 유신적인 변화를 정치 내적인 구성에서 단정할 수 있게 됐다.
3·8개편은 탈 정당적이라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
탈당한 29명은 몇 가지 측면에서 가장 공화당적이었던 사람들이다. 김종필 부총재가 그렇고, 김진만 구태회 현오봉씨 등 당무위원들이 그렇고, 사무국 출신이 그러하다. 각기 공화당적인 한 면을 상회하다 시피한 이들이 공화당을 떠났을 뿐 아니라 탈 정당적인 세력 -유신 정우회-으로 기능을 갖게끔 한 3·8개편. 이는 분명히 한국 정치의 새로운 전환점이 아닐 수 없다.
이 전환점 이후에 전개될 정치 구도의 특색은 이렇게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안정 세력 확보 이상의 차원>
첫째, 국회는 통일 주체 국민 회의적 성격을 얼마간 띠게 된다는 점. 유정회는 정당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유신 정치의 지침 아래 기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추천「케이스」의원 전원으로 한 개의 교섭단체를 만들게 된 것은 이들을 선출한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성격 때문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실상 추천「케이스」를 공화당과 함께 묶는다든가, 그 일부를 나누어 공화당 쪽에 묶는다면 추천「케이스」가 안정세 확보만을 위한 것 밖에 안 된다. 안정세가 중요치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이미 대립과 투쟁을 전제로 한 개념. 그것을 한 단계 지난 이념(유신)적 논리로서 추천「케이스」를 독립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둘째, 유정회가 친여 세력이니 만큼 이원적 여당 체제를 이룰 수밖에 없다. 국회 운영도 이원 주도일 수밖에 없다. 더우기 의석수에서는 유정회=73·공화=7l·신민=52로 유정회가 제1당적 교섭 단체이기 때문에 유정회가 67, 68년에 있었던 정우회(대표=이동원)나 그 이전의 삼민회 같은 보족적 위치에 서지는 않게 됐다. 오히려 공화당의 장로급이 많이 있기 때문에 공화·유정회 관계에서는 유정회가 상원적 견제 기능을 할 가능성이 많다.
세째는 정치 관계의 다원화다. 종전에 집권 세력 관계를 얘기할 때(형식적이고 가시적 정치 요소만이지만) 정부-국회-당의 삼각 관계로 설명했다.
이 삼각 관계가 이제는 사각 관계로 바뀐다. 행정부=김종필 총리, 국회=정일권 의장(내정), 공화당=이효상 당의장서리, 유정회=백두진 회장(내정)의 네 기둥이 정점-박정희 대통령을 떠받치는 것이다. 이 사각 중 유정회는 통일주체국민회의를 배경으로 그 상임위적인 성격을 띤다.

<친여 무소속 공화에 기울어>
3·8개편 구상의 근원은 어딘지 분명치 않다.
공화당은 당적을 가진 29명의 추천 의원을 당에 남겨 공화당을 제1 교섭 단체로하고 나머지 40여명으로 별도의 교섭단체를 주장했던 것 같다.
이러한 당쪽 구상은 7일하오 청와대를 방문한 정일권 전당의장서리·길전식 사무총장에 의해 박 대통령에 건의됐으나 박 대통령대로의 구상이 있어 실현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3·8개편은 대립·투쟁·협상이라는 정당적 차원의 국회를 생산적이고 능률적인 국민적 차원으로 끌어올리려는 박 대통령의 뜻에 의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착상은 지역구 공천 때 이전일지도 모른다. 낙천 중진들이 추천「케이스」에 구제되어 탈당케 된 것으로 미루어 그런 짐작이 가는 것이다.
이 3·8개편으로 인해 무소속과의 관계도 방향이 잡힌다. 추천「케이스」의 제도적 특수성 때문에, 무소속의 친여계가 유정회에 가담하리라는 전망은 있을 수 없다. 그들이 공화당에 입당할 가능성은 있어도….
어쨌든 현재로서는 공화당이 3분의1미달의 의석으로 임시국회소집조차 단독으로 못하지만 유정회는 꼭 3분의1의석을 가져 임시국회소집 뿐 아니라 총리·국무위부해임발의권, 탄핵소추발의권들을 독자로 갖게 됐다.
이런 활동을 단독으로 벌이지는 않겠지만 그 같은 능력을 홀로 유보하고 있다는 사실은 유정회의 발언권을 높일 수 있다.

<원내 요직은 공화 중심>
3·8개편이 탈 정당적인 것이라면 공화당은 양과 질 양면에서 약화될 수밖에 없다.
공화당은 창당이래 지금껏 권력의 삼각 관계에서 당권을 신장해 온 적이 없다. 크게는 후견적, 적게는 보족적 역할에 안주해 왔다.
이제는 그 후견적 배경을 통일주체국민회의 또는 유정회가 맡게 되어 공화당의 몫은 더욱 줄어든 셈이다.
29명의 탈당과 아울러 공화당은 이효상씨가 새로 당 의장서리를 맡게 됐고 정책위의장·중앙위의장·원내총무 등 당내 개편은 당의 질적 변화에 걸 맞는 「라인업」이랄 수 있다.
이효상 의장서리, 백남억 총재상임고문, 길전식 사무총장 외에 4선 이상 의원은 장경순 김용태 박준규 이병희 육인수 김종철 차지철 이병옥 오학진 서상린 의원 등인데 이들이 모두 당무위원으로 임명돼 다선 중심의 신진대사는 이루어졌다.
또 이미 검토되고 있는 당 기구 축소에선 당부총재·당재정위원장을 두지 않고 정책위와 사무국도 많이 줄이는 방향인데 탈 정당적 3·8개편의 원칙에서 보면 이 같은 기구·기능의 축소는 필연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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