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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고민...소수민족「내셔널리즘」|우리는 「러시아인」이 될 수 없다|「크렘린」의 동화정책에 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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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소련 안의 소수민족들 사이에 민족적 주체성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크게 팽배하고 있다. 오랫동안 억압에 시달리던 비「러시아」계 소수민족들이 「크렘린」의 중앙집권적인 전제와 획일적인 「러시아」화 동화정책에 반발, 반기를 들고나선 것이다.
소련의 국가 및 인종구성은 복잡하다. 현재 소련(정식명칭은「소비에트」사회주의 공화연방)은「러시아」공화국을 비롯한 15개의 공화국으로 구성되어있는데 그 인종이 각각 다르다. 이들 공화국은 형식적으로는 민족자결의 원칙에 따라 독자적인 정부·입법기관·공산당, 그리고 대외적으로 독립된 군사·외교권까지 갖고있다 (이들 중 백「러시아」와「우크라이나」공화국은 1945년이래 「유엔」회원국이다).
그러나 이것은 명목적인 것일 뿐 실제로 주요한 정치적 결정은 이들 기구와 관계없이「모스크바」당국에 의해 일방적으로 행해진다. 단적인 예로 최근 백「러시아」공화국 외 교생은 「브레즈네프」서기장과「퐁피투」「프랑스」대통령간의 정상회담이 자국수도인 「민스크」에서 열린다는 사실조차 공식 「채늘」이 아니라 한 영국외교관을 통해서 알았을 정도이다.
인종 또한 1백30여 종족이나 되는데 2억5천만의 인구 중 「러시아」인이 53%를 차지, 대종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러시아」인의 인구 비는 점차 감소추세에 있어 7년이 지나면 비 「러시아」계 소수민족이 다수파가 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 같은 「러시아」인의 열세 화 추세와 관련, 소수「내셔널리즘」의 독자성요구주장은 이제까지 소련집권 설이 추구해왔던『단일한 보편적 사회주의 문화건설』이 중대한 시련에 부닥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최근 드러난 비「러시아」계 소수민족들의 저항의 사례를 들어보면-.
▲「우크라이나」는 인구 4천만으로 비「러시아」계로선 최대의 종족이다. 그러나 같은 「슬라브」족 계에 속하는 「러시아」인에의 동화를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민족주의적 동요가 가장 심한 곳.
지난 66년∼67년 사이에 상당수의 지식인들이 「우크라이나」의 언어와 역사를 보다 많이 가르칠 것을 요구하다가 강제수용소로 끌러갔다.
작년 1월과 5월에도 수백 명의 민족주의자들이 검거되는 선풍이 불었는데 결국「우크라이나」당 서기장「피오트르·셀레스트」가 인책강등 되었다.
▲인구 7백만에 불과한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등 이른바 「발틱」3국은 독립을 유지해오다가 1940년 소련군에 피점,2차대전후 합병된 나라들인데 「슬라브」족에 대한공포심이 가장 큰 나라들이다.
그 중에도 「가롤릭」교도가 압도적인 「리투아니아」는 작년 봄 약1만7천여 명이 『종교의 자유』를 요구하는 대대적인 서명운동을 벌인바있는 반소운동의 중심지. 이들 소국에 「슬라브」족 계인 「러시아」「우크라이나」인들이 대량 이주해와 현지인의 인구 비는 해마다 격감,1970년엔 57%로 떨어졌다.
이러한 현상에 분개한「리투아니아」의 청년수명이 작년에 분신 자살한 사건을 계기로 『「리투아니아」에 자유를 달라』는 반소 「데모」가 며칠이나 계속됐다. 결국 군대까지 동원, 진압되긴 했으나 불씨는 내연을 계속하고 있다.
▲「스탈린」의 고향이었던 「그루지야」에서도 합병 전 「그루지야」의 독자적사회주의 혁명활동을 찬양한 책의 출간이 문제되어 학자·언론인들이 대거 숙청되고 지난 10월엔 당 서기장까지 실각했다.
▲「크리미아」의 「타타르」족들은 2차 대전당시독일군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스랄린」에 의해 「우즈베크」로 잔인한 추방을 당했었다. 이들은 쫓겨난 고향에의 복귀허가를 요구하면서 반정부저항을 벌이고 있다.
또 이와 비슷한 운명의「모슬렘」이 소수민족인 「메수케티언」인들은 그들과 언어·문화가 유사한「터키」로 이민가게 허가해 달라는 운동을 시작했다.
▲「카자크」「타지크」「키르기즈」등 중앙「아시아」제국은 현지 「아시아」계 인들의 높은 출산율 때문에 「러시아」인들이 열세 화, 현지 인들을 인구가 희박한 벽지로 이주시키는데 대한 불만이 크다.
이러한 소수민족의 「내셔널리즘」은 가깝게는 소련 내「유대」인의「이스라엘」이민이 비교적 성공한 점, 최근 3천명의 독일계 인이 서독으로 귀국허가 된 점, 또 「아이러니컬」하게「모스크바」가 지원하고 있는 「아시아」「아프리카」의 『민족해방운동』등에 고무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요인은 다른데 있다. 「러시아」라는 강대국을 이웃해 있기 때문에 소련 방에 합병되는 비운을 감수해야했던 이들은 이제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에 매력을 상실했다. 「이데올로기」에 앞서 민족적 독자성의 유지가 우선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헌법이론상으로 보유하고 있는 권리인 『소련 방에서의 탈퇴』까지는 가지 않는다 해도 보다 많은 문학·경제·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의 귀결이다. 3년 전 미국에 망명하려다 실패했던 「리투아니아」의 젊은 선원 「시마스·쿠드리카」는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스탈린」의 죽음은 우리민족을 물리적 멸망으로부터 구출해주었다. 그러나 기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이제 우리는 보다 느린 죽음-동화-의 운명에 놓여있다.』이것은 소련내의 소수민족문제의 핵심을 말해주는 것이 된다. 이것은 또 각도를 달리해서보면『공산주의이념의 우산아래에서 개별적인 민족감점은 소실되고 말 것이다』는 「레니」「스탈린」등「마르크시스튼」들의 예언이50년을 경과한 오늘 무색해 진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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