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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 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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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봉사의 뜻과 한국사상에서 그것이 정착되어 있는지 서론적인 것부터 알아보기로 한다.
봉사란 말은 역시 기독교에서 유래한 말일 것이다.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고 섬기려고 왔으며, 섬기되 내 목숨을 버려 많은 사람을 속량 하는 데까지 섬기려는 것이다』 고 예수의 자기선언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개념이 아닌가 싶다. 봉사란 것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보다도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섬기는 것을 말한다.
예수가 제자의 발을 씻긴 것이라든지, 하느님 아들이면서 인간의 종 되는 것을 오히려 자랑으로 삼는 삶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동양에서도 성군들, 특히 은왕 성탕 같은 이는 7년 대한 때에 임금이면서 백성을 대신하여 자기 몸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제례를 행하였다고 했으니까 같은 방향이었다고 하겠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종노릇한다는 것은 비례로 되어있다. 웃어른이 아랫사람에게 은덕을 입는 것이 정상적인 개념이었던 것 같다.

<토착화 안된 봉사의 개념>
그러므로 윗사람은 지배하고 아랫사람이 섬긴다는 것이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생각일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봉사 개념이란 것은 우리 나라에는 아직 토착화했다고 볼 수 없다.
불교에서는 무아해탈의 자비행을 수도의 목표로 삼느니 만큼 아집 없는 이타생활이 그 본연의 자세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 자체가 소위 「봉사」라는 개념과 통하는 것이리라.
요컨대 지금 우리는 근대화, 즉 현대산업 사회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중이니까 이 근대화 운동을 나라와 민족, 마을 등의 공동 복지를 달성하기 위한 운동으로 전개시키는 것이 좀더 넓은 의미에서의 「봉사」일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봉사」의 개념은 개인 대 개인 관계만이 아니라 사회라는 「레벨」에서 「메커니즘」을 적용할 단계에 도달했다는 말이다.
「봉사」에 대한 정의는 이 정도로 끝내고 실지 경험담을 들어보기로 한다.

<조>불교신자로서 8·15 해방과 동시에 거리에 쏟아져 나온 고아·부랑아들을 차마 그대로 둘 수 없어서 자기 집에 너 댓 명씩 수용해서 건사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 재단법인사회사업 「대자원」의 시작이다. 그 동안에 8백72명을 길러서 다 고등학교까지 졸업시켜 병역도 마치고 직장에 취직도 시키고 했다. 지금 남아있는「대자원」 식구는 63명이다. 어느 자선단체 후원기관에도 가입하지 않고 온전히 내 힘으로 해 본다고 무척 고생했으나 그만큼 보람과 긍지도 느낀다.
「지비끼」 (지예)씨는 일본 사람으로서 한국 농촌을 위해 일하는 분인데 경상북도 월성군 천북면에서 사단법인 「국제봉사 농장」을 경영하고 있다.
처음 시작한 때에는 여러 고장에서 도움을 받았지만 그후에는 온전히 자영하고 있다. 누가누구를 도와준다는 생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촌」이라는 이름의 음성나환자촌 1백2O호4백20명 농민의 한 「멤버」로서 자립·자활정신을 고취하고, 경영합리화와 협동농업을 지도하고있다. 기술·자본·구입·판매 등에서 불필요한 낭비를 없애고 소득을 중대시키는 방향에서 농장을 경영하고 있다.

<한국농촌서 일하는 일인>

<이신부> 제단법인 성심원을 경영하고 있는데 천주교 사회복지 사업기관이다. 여자를 상대로 한 기관은 전부터 있었으나 남자를 대상으로 하는 보육원은 천주교 사회복지 사업에서 착수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해방 후 거리의 고아들과 부랑아들을 모아 자기 능력대로 네댓씩 집에 데려다 기른 것이 시작이었다. 6·25때에는 부여·대구 등지에 옮겼다가 9·28에 환도해서 지금은1백5명 식구가 자급하고 있다.

<송> 한국 아동복리회 총무로 있다. 그러니까 제일선에서 직접 불우한 아동들을 돕는 일은 아니지만 그런 일하는 개인이나 단체를 간접으로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아동복리희」란 것은 미국 「리치먼드」시에 본부가 있고 세계 6O여 개국에 지부를 두고 활동하는데 한국도 그 한 지부이다. 사업내용은 아동보건을 위한 의료기관 설립과 운영, 전쟁고아 보육, 문제아 특수지도 등 주로 보전과 교육을 맡고 있다. 한국에만 1년에 2백50만「달러」예산으로 1백여 기관을 지원하고있다.
지금은 가정적으로 너무 어려워서 아동을 취학시키지 못하는 가정에 손을 뻗쳐서 하나 하나 심사하여 장학금을 대주는 일도 하고있다.
현재 약6천 가정이 이런 방향에서 도움을 받고 있다. 부산에 아동병원을 설립해서 의료를 실시하고 있는데 온전히 무료로 의료 혜택받은 아동이 1만6천여 명이다.
- 다음으로 이런 봉사활동에 투신한 동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지예> 일본 동경 농대를 마치고 한국에 나왔다. 대학 재학 중에도 봉사에 대한 관심이 떠나지 않았었는데, 특히 「국제 워커·캠프」의「멤버」로 한국에 왔다가 한국농촌에 봉사할 결심을 했다. 시작하기 전에 다섯 번 한국을 왕래하면서 준비했다. 일을 시작한지 9년째 된다.

<조> 나는 본래 함안 출신인데 열 일곱 살 학생시절에 기미 3·l운동에 가담해서 체포령에 쫓겨 변성명 하고 경주에 숨어있었다. 그 동안에 일경에게 잡혀서 5, 6차 유치장·형무소 살이를 하고 나와서 약국을 경영하며 독립운동 자금조달에 종사하다가 탄로 나서 또 고생했다. 그러다가 해방을 맞이하니 그 감격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국민족의 새싹인 소년들이 짓밟히는 것을 거저 볼 수 없어서 대자원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종교계·사회단체 활동>

<백> 연세대 공대 재학 중인데 학생들의 봉사활동을 조직화하여 휴가를 이용하여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금 12개 대학에 회원 2백 명을 갖고 있다. 봉사활동에는 일곱 번 나갔었고 1년에 두 번씩 나가고 있다. 지난번 휴가에는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관매도라는 작은 섬에 갔었다. 계몽·노래·의료·4H「클럽」지도·위생·경영합리화·구입·판매 등 조합운동·마을 회관건립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같이 일했다. 그러나 봉사활동에 대한 일반 사회의 인식은 충분한 것이 못된다.
- 봉사하는 동안에 특별히 어려웠던 일, 또는 대 사회관계에서 시정되었으면 하는 일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일반사회가 온전히 이득동기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기일변도 방향을 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예> 일본사람은 자기 일은 자기가 하고 남의 신세를 지지 않는다는 것, 남에게 누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생활신조로 하고 있다. 그 대신에 남의 일에 뛰어 들지 앉고 남을 도와야 한다는 의무 같은 것은 거의 느끼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사람의 기질이 그렇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한국 사람들이니 만큼, 일본사람으로서의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다. 저 사람이 왜 일본서 대학까지 졸업하고서 한국에 나와 한국인 사회에서 농사꾼 노릇을 하는 것일까 하고 얼른 믿어주지 않는 것이 괴롭다면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있어서 이일을 하고 있다. 나는 물질주의적 생활을 좋게 생각지 않는다. 물질 없이 살수는 없으나 물질은 보통 시민의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제일 큰 문제는 재원부족>
그 이상의 물질은 모두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삶을 한국농촌사회에 바치는 것이 나의 보람이라고 믿기 때문에 즐겁게 봉사하고 있다.
나는 아무 종교도 갖고있지 않으나 내 삶의 뜻을 거기서 발견했기 때문에 일생을 그 길로 살아갈 결심이다. 일을 해 보면 단기봉사는 비교적 쉽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일생을 한결같이 같은 봉사에 바친다는 것은 어렵다고 느꼈다. 나는 아무 행정 단체의 도움도 받은 일이 없다.
내가 백2O호 농촌에서 도움이 된다는 것은 첫째로 시범이다. 실지로 새롭게 해 보이면 자연 농민들도 흥미를 느끼고 따라 하게된다. 둘째로는 협동경영이다.「종돈단지」를 마련하여 새끼돼지를 배부하는 것 같은 일도 그 하나이다.
양잠도 합리적으로 협동사양을 한다. 기술향상이나, 시간과 노력의 절약, 수익의 증대동등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도 사회적 인식은 부족하다고 보겠다.

<이신부> 이런 복지사회 사업은 말하자면 국가·사회 전체로서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어떤 특정인에게 만 맡기고 모르는 체 하는 것은 문명사회라는 데서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새는 「새마을」운동 같은 것이 있어서 전보다는 사회적 인식이 다소 나아지는 것 같다.
제일 문제는 재원부족이다. 전국에 사회복지 기관이 5백 개쯤 되는데 그 전체를 돌보는 큰 재단이 설립되어서 매년 몇 기관씩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후원하여 적어도 그 기관만은 재정기반이 됐을 때, 자립을 약속시키고 그 다음에 또 다른 몇 개의 기관에 집중 지원하면 좋을 것이다. 소액의 보조를 나누어줘서 일시 해갈이나 하고 도루묵이 되는 현상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송> 우리 사회의 퇴폐풍조라는 것은 어느 일부에 국한된 폐습이라기보다도 사회전체의 방향감각이 잘못돼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우선 모두가 행복을 원하는데 행복과 만족은 물질만 풍부하면 저절로 오는 것이라고 속단하고있다. 그래서 모두가 물질적 소유에 혼이 빠져있다. 지도층이라는 정치·경제 등에 앞장서는 분들도 언필칭「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 잘살기 위해서는 「경제가 제일이다」하고 나선다.
잘 산다는 것은 무슨 짓을 하든지 돈을 많이 벌어서 호화롭게 살아본다는 뜻이 되고 말았다. 모두가 그걸 원하니까 성공한 사람은 소원성취 했다고 사치 일락을 즐기니 부패할 것이고 성공 못한 사람은 부아가나서 불만을 발산시킨다고 타락하고 하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잘산다」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바르게 산다」는 것까지 한데 겹쳐서 두 원칙이 하나가 되어 사는 것이라야 참으로 잘사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봉사」의 높은 의미를 깨달아야 하겠다. 「봉사」는 남을 섬김으로써 나도 섬김을 받는 삶의 길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부정부패의 요소가 끼여들지 않는다.

<항구적이고 합리적으로>
둘째로는 봉사도 과학적으로 진행시켜야 하겠다. 덮어놓고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크리스마스」계절에 양로원 같은 데에 갑자기 많은 선물을 보내와서 노인들이 한꺼번에 많은 음식을 자시고 배탈이 나서 경영자도 노인도 애먹는 것과 같다. 앞뒤를 따져서 항구적이고 합리적인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방법으로 봉사해야 할 것이다.
셋째로 봉사는 어떤 특정된 소수인들 만이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시정해야 하겠다. 마음씨 좋은 몇 사람은 봉사를 할는지 모르지만, 일반사회인은 으레 그런 건 안해도 무방하다는 것, 오히려 안 하는 것이 정상적이라는 생각들을 그쳐야 하겠다는 말이다.
봉사의 생활화·일반화는 당연히 해야할 의무이다. 사회적 불우자는 사회전반의 책임이니까. 넷째로 한번 봉사의 인연을 맺으면 일생을 두고 꾸준히 관심을 가져줘야 하겠다. 가령 어느 고아 하나를 돕기 시작했다면 그 애의 일평생을 책임지고 보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조> 자비심 아닌 동기에서 출발한 사회사업은 봉사라 할 수 없다. 우물에 빠져 들어가는 아이를 무아의 경지에서 뛰어들어 살리려는 「지장보살」의 마음씨가 사회사업의 혼이다. 사회사업을 해서 자기가 잘살고, 어떤 사람은 부자까지 된 것을 가끔 보게되지만 그것은 장사이지 사회사업은 아니다.

<백> 나를 남에게 부담시키지 않겠다는 것이 우리 대학생 봉사대의 정신이다. 어느 시골에 봉사하러 나가도 우리는 결코 그 고장에 「민폐」를 끼치는 일이 없다. 그러니 만큼 본부에 연합 봉사 만으로서의 기금준비가 확실해야 하겠다. 그리고 사회유지들이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어야할 것이다.
- 봉사현장에 투신해 온 분들의 생생한 체험담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귀중한 교훈을 준다. 물질주의·배금주의가 팽배하고 있는 사회풍조 속에서 진정한 봉사의 이념을 찾기 위해서 무엇보다 삶이란 무엇이냐, 참된 행복이란 무엇이냐 하는 가치관의 정립이 기 기초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봉사정신의 사회화가 이루어져야 하겠고 문교부나 교육기관 같은데서 휴가기간에 대학생들을 많이 이용해 주었으면 한다.

<이신부> 기본적인「휴머니즘」에 입각하여 『이웃 사랑하기를 너 몸같이 하라』는 계명을 진지하게 기억해줬으면 한다. 그 마음가짐만 살아 움직인다면 「봉사」에 참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올바른 가치관 확립 시급>

<송>가치관을 바로 설정해야한다.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고한 예수의 말씀대로 물질적인 욕구가 정신적인 가치관에 지배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봉사」니 「사회사업」이니 하는 것이 한국에서는 아직도 혈연관계의 경계선을 넘지 못하고있는 것 같다..
가령 고아를 입양시킨다는 것도 자기 혈연을 이어갈 자녀가 없을 때 부득이한 방법으로 입양시키는 것과 같다.
당연한 사회적 의무로 생각하고 불우한 소년소녀를 자기가정에 입양시키는 마음가짐에 까지 밀어 올려야 할 것 같다.

<조> 우리 민족이 원래 자비심이 없는 것이 아닌데 너무 빈곤해서 그런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빈곤에서 우리자신을 구출해야 할 것이다.

<백>자기 일은 자기가 책임지고 해내면서 이웃을 돕는 정신을 철저히 의식해야 하겠다. 또 사회정책에 있어서 역「피라미드」식으로 부가 편재하는 것을 막고 될 수 있는 대로 복리가 균점되게 되어나가야 할 것이다.

<지예> 경제에 있어서 소비경제를 지양해줬으면 한다. 봉사에 있어서 「내가 지금 나를 희생시키면서 이 일을 한다」고 하는 자기의식을 내세우면 그 사람은 차라리 「봉사」 란 맡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자기 희생 의식을 내세워서는 봉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서양에서도 「봉사」라면 주로 개인 대 개인 관계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에 모든 문제는 개인의 한계선에서 집단적·사회 계층적인 문제로 전환해왔다.
그러므로 개인 하나 하나를 불심으로 대하는 것이 물론 근본적인 것이겠으나, 그 방법으로서는 도저히 그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 낼 수가 없다. 그래서 「봉사」도 거대한 조직체 안에 거대한 「풀」을 만들고 그 운영도「메커니즘」에 의할 수밖에 없이 되고 있다
영국이나 북「유럽」의 복지국가에서 하는 방식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거대한「봉사 메커니즘」 속에서 거기 관여하는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자비심의 고귀한 가치를 느끼며 보람에 넘쳐서 일하는 양전을 기대하고 싶다.

<사회 및 대표 집필|김재준 목사>
참석자(무순)
조인좌(경주소재·대자원장)
이우철(서울소재·성심원장)
송윤견(기독교아동복리회한국지부장)
지예강기(국제봉사농장운영위원장)
백현(연세대·적십자 회원)
주 제 「봉사」
일 시 1972년 l2월 22일 하오3시
장 소 중앙일보사 회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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