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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세계의 시인·작가들의 진맥|새우들이 억압·천대·편견을 박차고 고개든 세대의 탄생|영 작가 키터마스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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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런던=박중희특파원】▲박=지금 우리가 l982년에 만나 1972년 얘기를 끄집어내고 있다고 치자. 72년하면 뭣부터 얘깃거리가 될 것 같으냐?
▲키터마스터=워낙 기억력이라면 영점인 편이지만 아마 한가지 일이라기보다는 광경은 금방 머리에 떠오를 거다. 주은래가 탕수육인지 뭔지를 젓가락으로 집어다가 「닉슨」부인 접시에다 갖다 놔주니까 옆에서 궤짝화면을 함께 들여다보던 우리 집 여편내가 『어마, 어쩌면!』하고 있던 모습이다.
역사로서의 72년 얘기에 하필이면 하잘 것 없는 제 마누라의 경탄성 나위부터 쳐드는 거냐 한다면 그건 내 나름대론 그것이 72년을 기억할만한 것으로 해준 것으로 여겨진 때문에서다.
우선 마누라의 『어쩌면!』 이 지구상의 소박한 백성들의 심사로선 꽤는 전형적인 것으로 볼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고 또 왜 『어머나!』했느냐에 적지 않은 역사의 의미를 읽었다는 것이다. 속된말로 쇼크의 까닭을 이렇게 예를 들어보자.

<고래족들간 싸움 없어지고>
도둑놈(오해 말고 얘기를 들어봐라)이 형사내외하고 술상을 벌였다. 희안한 일이다. 물론 너나 나의 여편네들이 미국과 중공사이를 「이제는」도둑놈과 형사와의 관계라고 만은 보지 않을 거다. 그러나 지난 4반세기동안 태반의 사람들의 머리에 박혀온 미·중공관계란 그게 누구의 소위였건 대저 그러한 것이었다는건 틀림없는 일이다. 누가 도둑놈이냐는 미국으로 쳐선 그건 「당연히」중공이었고 중공입장에선 말할 것도 없이 거꾸로의 얘기다.
그래서도 『어쩌면!』의 소리가 나오기도 했겠지만 그 놀라움의 또 한가지의 의미는 『지금도 저자들이 그런 관계냐?』라는 회의에도 있다고 본다. 고정관념에 대한 회의야 언제 어디서나 있어 온 것이니까 그 자체 새삼스러울게 없다손 치더라도 그 참의의 대상이 도대체가 엄청난 것들이고, 또 그런 회의라는 것이 세계적인 규모에서 거의 일반화되게 됐다는데에 그 「탕수육사건」이 갖는 정치적인 또는 역사적인 의의를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가지 더 덤으로 붙인다면 그런 회의라는 것이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이고 어느 모론 꽤 희망적인 뉘앙스도 갖는다는 일이다-라는 것은 좋건 싫건 미국이나 중공은 국제정치면에서 아무래도 고래씨들이다. 하느님은 야속하게도 고래가 싸움을 하면 새우등이 터지게 만들어 놓았다. 우리 새우족들이 등이 터지지 않나하고 조마조마하게 살아온게 장장 스무해가 넘었으면 마누라가 『좋아서 놀랐다』해둔들 나무랄 건 없다.
▲박=고래들이 싸움을 안하게 됐다는 얘기냐?
▲키터마스터=곧 그렇다고 한다면 우직스럽다. 제각기 국가의 목적이라는게 하루 아침이나 한 세대쯤에 바꿔지리라고는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종목적이야 「잡아먹자」, 「같이 살자」건 그렇게 하기 위한 행동양태의 차원에서 그나마의 변화만도 응분의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국가라는건 뭐냐.
나는 이렇게 자기류로 규정해 본다. 『혼자선 곧잘 젓가락질을 하다가도 「밥을 젓가락으로 먹다니 그게 될번이나 할 말이냐!」고 우기고 나서게 하는 것, 그게 국가다』라고.

<「세계의 개미」단결을 호소>
다시 「닉슨」·주 양가의 잔치에 돌아가지만, 닉슨 부인이 서투르게나마 젓가락질을 하고 주씨가 꽤 양풍으로 술잔을 들고 일어서 토스트(축배)를 들고 하던건 인상적이었다. 하긴 따지고 본다면 이상스러울게 하나도 없는 일이다. 내가 중국 집에 가면 젓가락질하는 것처럼 네가 양식집에 오면 으례 포크질을 한다(인산이란 본질적으로 그렇게 순하고 선하고 양한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게 국가라는 처지가 돼봐라.
밥이란 전적으로 젓가락으로 또는 포크로 먹는 거다. 먹어야하는거다로 된다. 국가간의 평화의 양은 그 바닥에선 젓가락과 포크간의 양수관계에 있다고 봐 잘못일게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간의 차이에 대한 인식이 상호 긍정적이냐, 수용적이거나 아니면 타협적이냐, 그렇지 않으면 그 정반대냐에 평화냐, 전쟁이냐가 달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개인적 관계에서 흔히 보는 서로의 선의나 신축성이 국가라는 차원에 오르면 감추고 PAX(평화)다하면 그건 젓가락, 포크 또는 동이나 서식으로라야만 된다고 해온 것이 오래고 한심한 전통이었고 아마 앞으로도 흔히들 그럴 것이다.
그러나 고래들이 자장면을 나누는 양면의 모럴을 국가라는 존재의(이를테면) 인간화에의 기도라고 봐줄 수 있다면 고래들이 싸움을 안 하기로 했다까지는 안가더라도 덜하게 됐다쯤으로 해 놓은 대도 어림없는 얘기는 아닐성 싶다. 그래서도 72년은 기억에 남을 것이고….

<국가마다 레저성 생겨야>
▲박=…라는 것은 우리도 이제 발좀 뻗고 자게됐다?
▲키터마스터=…고 생각하고 싶지만 맹랑한건 이제 고래들보다도 새우들이 한결 날뛰게 됐다는 것이다. 72년 얘기로 또 하나 머리에 떠오를 것은, 혹시 아는지 모르지만 동성연애자들이 런던에서 동성연애자 협회라는 걸 만들어 가지고 『세계의 게이(GAY-동성연애자)들이여, 단결하라!』라는 깃발을 들고 한바탕 그들 이름대로 즐거운 데모를 벌였던 사건이다. 이것은 여러모로 72년 또는 70년대를 상징해 주는 것이엇다. 동성연애자는 사회 안의 작은 소수파다. 말하자면 오래 억눌려온 사회적인 새우들이다. 이런 새우들이 억압·천대·편견을 박차고 고개를 드는 세대의 탄생, 그것이 72년 한해 더욱 박차를 가했다는 것이다. 비슷한 종류의 새우들이 얼마나 많으냐? 북 에이레의 가톨릭 교주, 뱅글라데쉬, 팔레스타인 피난민, 거뭉이들, 하다못해 몇백년 동안 잘 위해주다 보니까 위민즈·리브(여성해방)란 기살을 내거는 기막힌 여성들….종전까진 동서쯤으로 아주 간단하고 간편스럽게 갈렸던 대립의 관계가 사회적·계급적·종교적·인종적·지리적·성적으로 갈래갈래 찢어져 한층 다사다단, 정말이지 요새 유행어로 다극화시대다. 그러니까 이젠 새우들 싸움에 고래들이 발뻗고 자기 어렵게 됐다.
▲박=앞이 캄캄해지는구나.
▲키터마스터=환해진다고 해두자. 등이 터질 염려가 적은 덕으로 잠을 덜 잔들 어떠냐. 참, 그 고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인간환경회의인가 무너가에서 고래 잡아먹지 말자라는 결의를 한 것도 생각에 남을 일의 하나로 쳐도 괜찮겠다. 뭐, 그 덕에 고래들이 살아남게 됐다기보다도 그런 결의나 회의나가 있게된 기본발상으로 치면 그건 『대관절 한평생을 이따위로 살아야 하느냐』라는 것쯤이었다고 할 수 잇고, 이런 자문을 하게된건 적지 않게 뜻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한 3백년 개인이나 집단이나 국가를 움직여온 커다란 가치는 『어떻게 하면 많이 잡아먹느냐』, 잡아먹을게 없으면 『어떻게 하면 많이 만들어먹느냐』였다. 많이 생산해서 많이 소실하는 놈이 제일이다. 정부기조를 봐라 건설부·노동성·고용생산성성·상공부·철강성…따위로 어느 하나 생산이나 그를 위한 노동과 관계되지 않은게 없다. 한 평생 죽어라하고 일하고 죽어라하고 소비하고 그러다가 죽으면 인생은 행복한 거다. 행복이란건 그놈의 소득을 따지면 안다. 나라라는 것도 순전히 GNP 때문에 있다쯤으로 돼왔다. 한참 신낙들 했다.
많이 만들고 낳고 먹고 서로잡고 그 통에 소위 공해라는 것들이 설사처럼 쏟아져 나오고. 라인강에 빠지면 익사하기 전에 먼저 썩어 죽는다. 공해다, 인간환경이다, 생활의 질이다,, 이콜러지다 하고 떠들어지게 된게 만시지탄이 있대도 그런 얘기 안하면 개인이건 정부건 못난이 취급되게 된 풍도 역사적이다. 이왕 정부라는게 있자면 노도성과 함께 이체 레저성쯤도 생겨야 할법한 일이다.
이제 우리들이 인간이란 먹고 ×누기 위해 있는게 아니다라는 꽤 사람 같은 얘기들을 하게 된 품으로 쳐선 어느 약삭빠른 정부가 그런 성하나 만들어 낸 대도 놀랄건 없을 거다.

<사람답게 처신할 수 있어야>
국가란 생산하기 위해 있다고 하기보다는 국가란 즐기기 위해있다고 하는게 낫다. 좀더 사람다와보자는 얘기에 관련해서 생각나는 72년의 잊고 싶지 않을 일의 하나는 EEC이사회의 멘숄트 의장이 적어도 유럽에서나마 여권이 없는 세계를 만들자는 말을 했다는 일이다. 유럽에서나마 운운한 것은 사실은 아주 낯간지러운 일이긴 하다. 도대체 여권이란걸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만들어낸게 유럽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서 유럽 사람들은 부끄러워햐야 G나다. 여권이란 인간이 얼마나 여러모에서 개·돼지만도 못한가를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 나들일 간대서 모가지에 개딱지를 달고나서야 한는건 온 동물 중에 인간밖에는 없다. 인간은 자신을 동물 이하로 만드는데도 비상한 재주를 발휘해온 셈이다. 명저 인간동물원을 쓴 데즈몬드·모리스가 우리 인간세계를 동물원에 비긴 것은 그런 점에서도 아주 적절한 표현이겠다.
멘숄트 의원의 말을, 이런 짐승만도 못한 버릇을 애당초 만들어낸 속죄로서 우선 여기서만이라도 여권이라는걸 없애자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괜찮겠다.
그리고 정말 적어도 1973년1월1일 영국 등의 가입으로 9개국으로 느는 확대구주회원국들 사이에서만은 여권이라는 것이 실질적으로 필요 없게 되는 것은 10년 안으로 충분히 가능한 문제일 것이다. 하긴 여권이 이 놈은 영산·저놈은 불제 하던식의 남남 의식이 빨리 또는 쉽사리 없어질 거냐는 별개의 문제긴 하지만. 적어도 이왕 사람인 바에야 우선 무엇보다 사람처럼 처신도 하고 생각도 하고 살림도 해볼 일이 아니냐 이런 얘기들이 꽤들 여러모로 나온다는건 앞으로 좀 나아진다는 얘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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