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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밥| 글. 그림 변종하(서양화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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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참새는 못잡게 하디요.
손님들은 자꾸만 참새 내 놓아라하니 어떡하갔소.
할 수 없디요.
병아리라도 배껴서 구어 팔디요.
손님 어디 가서 이런 말 마시라우요.
정말 그곳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참새인 줄 알고 있는지, 아니면 그것이 병아린줄 알면서도 천연스럽게 참새라고 생각하면서 한잔 소주에 눈을 스르르 감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얼마전 금렵령이 내린 이후 참새도 까치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아침이 되면 제법 참새 소리가 귀에 다정하다.
이따끔 까치도 앞들 대추나무가지를 찾아 와 맑게 운다.
이럴 때면 쭉 어릴 적 일이 생각난다.
미닫이를 여시고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있으려나 하시던 어머님 모습이다.
오랫동안 집을 비우시던 아버님의 소식을 기다리던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이었다는 것도 지금 나는 알만하다.
까치소리가 좋은 소식에 틀림없다고 딱 믿고 계시던 어머님이었다.
나는 까치소리와 엿장수의 가윗소리를 혼동하며 자랐다.
멀리 지나가던 엿장수의 가윗소리는 까치 소리와 흡사했다.

<호두까기 인형>의 까치소리도 나에겐 엿장수의 가윗소리인 것이다.
언젠가 늦은 가을 무주 구천동을 지나다 까치밥을 보았다.
오랫동안 못만난 벗과 같이 반가왔다.
앙상한 늙은 감나무가지 끝에 대롱대롱 몇 알의 홍시는 깨지듯이 푸르른 가을 하늘에 재롱스럽기만 했다.
까치밥은 이듬해 더 많은 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멋있는 선비의 운치가 유래라 해도 좋고, 가지가 높아서 미처 못 딴 것이라 해도 좋다.
아뭏든 몇 알의 감들은 까치밥인 것이다.
일손같이 마디진 그 감나무 가지 끝에 참새도 까치도 보이지는 않았으나, 언젠가 지나치다 쉬고 가는 까치들의 요기가 된 것을 생각하며 뒤돌아보곤 했다.
세상은 자꾸만 변하고, 인심은 더욱 각박해지기만 한다.
병아리 털을 벗겨서 참새라고 파는 판국이다.
참새 맛을 못 잊는 사람들은 병아리라도 취기에 엄버무려 버리는 것인지 이제 또 한 해가 저문다.
자꾸만 털 벗긴 병아리 빨간 두개골들이 눈앞에 떠오른다.
찬 서리 내리는 늦가을 가지 끝에 몇 알 까치밥을 남겨주는 그 마음씨가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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