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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일본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독일과 일본은 다같이 군국주의·전체주의 국가로서 서로 동맹을 맺고 각각 「유럽」과 「아시아」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도발했다. 그리하여 독일과 일본은 다같이 「유럽」과 「아시아」에서 침략자요 점령자로서 평화에 대한, 인류에 대한, 인륜에 대한, 『인간이 인간임을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는』범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이와 같이 패전에 이르기까지 같은 길을 달려온 독일과 일본은 그들의 그 과거에 대한 내면적 태도에 있어서는 전후에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독일사람들은 아직도 그들의 과거에 대한 죄의식의 과잉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반해서 일본사람들은 그들의 과거에 대한 죄의식의 태무상태로까지 멀쩡하게 과거에서 해방되고 있다.
일본의 이 같은 『과거로부터의 해방』은 다른 무엇보다도 전쟁 말에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떨어진 원자폭탄이 그 가장 결정적인 동인이 되고 있다. 일본에 대한 원폭세례는 하루아침에 가해자 일본을 피해자 일본으로, 전쟁도발자 일본을 전쟁희생자 일본으로, 군국주의 일본을 평화주의 일본으로 세계여론 앞에 전신시키는 일본홍보전략의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이처럼 일본이 하루아침에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군국주의자에서 평화주의자로 비약할 수 있은 데에는 다른 요인이 생각될 수 있다.
ⓛ전후에 금방 노골화된 전시연합국 사이에 대립과 동서냉전의 격화 ②일본제국주의의 최대피해자인 한민족과 중국민족의 전후 국제지위의 약화에 기인한 「침묵」 ③서양이 중심무대가 되는 국제정치 및 국제공론의 핵지대에서 한·일·중 3국이 「극동」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정학적 원격성 ④문화인류학자들이 말하는 일본문화에 있어서의 「죄악문화의 결여」 ⑤전후 일본의 급격한 경제부흥이 심리적인 차원에서 일본의 도의적 부흥을 불필요한 것으로 해버렸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흥기적으로 일단 일본이 「아시아」에서 다시 경제대국으로 재등장하자 일본은 어느새 정치적·도의적 차원에서도 「아시아」에 있어서의 지도자 위치를 요청하게 되었다. 그러나 과거에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았던 「아시아」민족들은 이 같은 새로운 대국일본의 등장을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그 이유는 ①일본이 스스로의 제국주의적 침략전쟁의 과거에 대해서 내면적·도의적인 극복을 「사보타지」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럼으로써 그의 평화에의 의지란 도의적인 확신에 의한 것이 아니라 기회주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②「아시아」의 평화에 대한 일본지도층의 주관적인 의지여하와 상관없이 「아시아」에서 고립하고 있는 섬나라로서의 일본의 지정학적 위치가 「아시아」의 평화보다는 「아시아」 의 분쟁과 분열을 일본에 유리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객관적인 여건이 있다.
「유럽」대륙에 깊이 묻혀있는 전후의 독일이 오직 「유럽」대륙의 평화에 의해서만 부강해질 수 있었다면 「아시아」에서 고립한 일본은 오히려 그동안 「아시아」의 분쟁과 분열에 의해서 부강해질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주관적으로는 「아시아」에 대한 과거의 전쟁에 대해서 도의적으로 청산함이 없고 객관적으로는 「아시아」의 호화보다는 분쟁이 유리한 위치에 있는 일본이 다시 「아시아」 의 대국으로 등장할 때 그 일본이 어떠한 나라인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무엇을 할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 일본식민지 치하에서 자란 세대로서의 나의 오늘의 일본관이다. [최정호<성균관대교수·신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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