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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로 눈 돌린 미 외교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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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파리 비밀 회담, 유럽 안보 회의 예비 회담, 제2차 SALT(전략 무기 제한 회담)의 속개 등 분주한 정치 협상을 벌이는 가운데 미국 정부 일각에서는 73년 미국 외교 정책의 중심 과제로서 대 유럽 정책을 가다듬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월남전 해결 후 키신저의 다음 역할은 서구와의 관계 조정이라고 서구에서도 보고 있다.
미국은 전에 없이 독자적으로 성장해 가는 EC가 범세계적으로 미국 경제에 타격을 주고 미·소의 양극적 정치 협상에 커다란 장애 요소로 등장하고 있는 사실에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닉슨 대통령 자신도 지난 8월 재선될 경우『평화의 세대』를 위한 자기의 외교 정책 구상의 첫 번째 목표로서 국제 경제 및 재정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며 『동맹국과의 관계가 최대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닉슨 대통령은 지난해에 있었던 국제 통화 회의이래 경제와 재정 문제가 국제 정치와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고 느낀 듯하다.
더우기 닉슨의 모스크바 방문에 따른 미·소의 양극 체제는 미·중공 접근으로 초래된 일·중공 관계의 진전보다 더욱 풍요한 성과를 서구·소 관계에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신념을 서구인에게 심어 주어 유럽의 미국에 대한 독자성이 강력해지고 있어 미국의 불안은 심화되고 있다.
닉슨 대통령이 서구 문제를 월남화 다음의 목표로 삼게된 이유는 소련과의 양극적인 긴장 완화 정책을 계속 추진하는데는 정치·경제적으로 미국과 이익을 같이 하는 유럽의 협조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공과의 관계 및 소련과의 SALT 협상에서 구 동맹국과 충분한 협의가 없었던 점에 서구 제국은 못 마땅하게 느끼고 있어 미국을 불신하는 경향이 커가고 있다. 더 중요한 문제로서 미국 자신이 유럽의 경제 공동체를 정치적으로 단합된 친미적인 유럽으로 성장하는 과도기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하는게 아니라 부당한 관세 장벽으로 정치 관계마저 저해할 「경쟁 상대」로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앞으로 계속 서구와의 협조 관계가 원만하지는 않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서구와의 관계 조정을 위한 일책으로 거론되는 것이 군사 동맹체인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성격 재편이다. 지난 9월 영·불·서독을 순방한 「키신저」보좌관이 『새로운 대서양의 동맹 관계』를 강조하며 다만 유럽의 안보를 중심으로 했던 재래의NATO 동맹은 더 이상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말하며 NATO의 발전적 체재 개편 의사를 시준 했다.
직접적으로 말한 것은 아니지만 서구 제국은 「키신저」의 발언을 미국 정부가 군사 동맹체인 NATO와 경제 공동체인 EEC(유럽공동시장)을 연관 기구로 묶어 앞으로는 NATO의 테두리 안으로 경제 및 재정 문제까지 끌어들일 구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닉슨 행정부가 유럽 문제에 중점을 두어야할 또 하나의 이유로는 주구 미군을 감축하라는 의회의 압력을 들 수 있다. 동맹 관계를 현 수준으로 유지하며 의회의 압력을 벗어나는 길은 서구 제국이 미군 주둔비를 현 수준 이상으로 부담하는 것이지만 이는 실현 가능성이 매우 어렵다.
미국 정부가 소극성을 보이던 소련 주도의 「유럽」 안보 회의에 적극성을 보이기 시작한 것도 상호 감군 문제가 주의제로 되어 있어 대의회 관계와 「유럽」 관계에 탄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월남 문제로 분주한 일정 속에서도 「키신저」가 이미 경제 문제에 관여하기 시작하여 대 유럽 「전쟁」 준비를 하고 있어 이 문제가 73년 미국 외교 정책의 촛점이 되리라는 것은 확실하나 구체적인 윤곽은 내년 2∼3월로 예정된 「닉슨」 대통령의 서구 제국 순방 후에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김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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