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의 새 외교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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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 선거 사상 최고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두 번째의 4년」을 맡게 된 「닉슨」 대통령은 자신의 재선을 『지속적인 세계 평화 시대를 개척해 달라는 유권자들의 위임』이라고 해석했다.
이것은 자신의 이번 승리가 새로운 「데탕트」 시대를 열었던 지난 4년간의 외교적 승리에 힘입은 것이라는 의미와 함께 또 이와 같은 정책이 앞으로의 4년 동안에도 그대로 지켜질 것임을 공약하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내포한다.
당선 직후의 기자 회견에서 그가 언명했듯이 『자유 진영에서 지금 이 일을 맡을 만한 나라는 미국 밖에 없으며』 따라서 국제적인 긴장 완화 기류가 극히 예민하게 작용할 한국으로서는 「닉슨」의 새 외교 정책에 대해 더욱 날카로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외신에 의하면 「닉슨」의 정책 구상은 주로 ①소련과의 전략 무기 제한 회담을 일층 강화하고 ②구주 안보 협상을 실현시키고 ③중공과의 대화를 계속한다는 것 등으로 지난 4년 동안의 노선과 거의 차이가 없다. 다시 말해서 국제 평화를 보장하는 것은 강자적 세계관을 대표하는 강대국 미국이어야 한다는 「파워·폴리틱스」의 논리가 그대로 계승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닉슨」의 이 같은 외교 정책의 표명은 원칙과 「흐름」의 동일성에도 불구하고 특히 아주 국가의 일부에서 일말의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69년7월 『「아시아」는 「아시아」인의 손으로』라고 선언한 「닉슨·독트린」, 70년5월 『전세계의 평화를 미·소·중공·일·EC 등 5강의 보강으로』 실현하자던 제안 등 때문에 그 적용 과정에서의 광범한 융통성에도 불구하고 두터운 의혹의 그림자를 완전히 씻어 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한스·모겐도」 교수가 이미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미국의 외교 정책은 고립주의와 국제주의가 번갈아 지배해 온 것이 사실이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닉슨·독트린」이나 5강 보장 안이 신고립주의의 출항 신호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는 일부 국가의 이러한 우려가 더욱 짙어질 수도 있고 깨끗이 씻어질 수도 있는 계기로서 월남에서의 휴전 방법을 주목한다. 「닉슨」은 재선 후의 첫 기자 회견에서 『고립주의를 버리고 국제 협조에 앞장설 것』을 약속했으나 월남 휴전 방안의 구체적인 결실 모습이야말로 이 말의 진의를 일깨워 줄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미국이 신고립주의에 빠지지 않고 「데탕트」와 국제 협조를 이룩하는 것을 『「타르타로스」의 물』로만 간주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다. 「닉슨」이 미국민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것도 따지고 보면 이 어려운 작업이 지난 4년 동안에 명증 되었다는 의견의 표시라고 생각된다.
다만 이와 같은 명제가 「이데올로기」와 국가 이익이 한데 얽힌 현대의 복합적 항쟁 시대에 이룩되자면 허다한 어려움이 있을 것을 또한 예상해야 할 것이다.
5강 보장 안이 제국주의시대의 유물인 세력권 설정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든가 자본주의 사회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무역 전쟁을 유발할 위험성도 전혀 없다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당면해서 「닉슨」이 신고립주의에의 역행을 부정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나 그렇다고 이것이 열강들의 노골적인 「파워·폴리틱스」 시대의 재래를 의미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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