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원활한 민영화 위해 기업 가치 높이는 데 주력”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52호 23면

이순우 회장은 “민영화를 하려면 부실을 없애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정동 기자

최고경영자(CEO)에게 실적은 양날의 칼이다. 실적이 좋으면 CEO의 평가가 올라가지만 실적이 나쁘면 스타 CEO라도 자리 보전이 어렵다. 우리금융그룹의 3분기 실적은 자산규모 1위(429조원) 금융그룹에 어울리지 않는다. 3분기 당기순이익 864억원은 전 분기보다 41.7%나 감소한 수치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선 1조원이나 줄었다. 그룹의 주력인 우리은행의 순이익이 9000억원 가까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원인은 화끈한 ‘부실 떨기’다. 금융회사는 대출이 부실해지면 건전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충당금을 비축한다. 우리금융이 쌓은 대손충당금은 3분기에만 8120억원, 1~3분기 누적으로는 1조9350억원에 이른다. STX, 쌍용건설, 동양과 관련된 충당금만 1조원 가까이 된다. 우리금융그룹의 선장 이순우 회장은 “시장의 불신을 씻어내고 싶었다”며 “당장 실적이 나빠지더라도 부실을 떨어내고 자산을 클린화해야 몸값이 올라가고 민영화가 쉬워진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이 회장을 만나 현안에 대해 물어봤다.

우리금융그룹 이순우 회장이 말하는 ‘부실 떨기’ 경영

-대규모 충당금을 쌓은 이유는.
“기업 부실 여신을 순차적으로 나눠서 덜어도 되지만 결국엔 모두 떨어내야 할 문제다. 이미 시장이 알고 있기 때문에 충당금을 넉넉히 쌓아두지 않으면 시장에선 ‘우리은행이 아직 충당금을 쌓을 게 많다’고 의심할 수 있다. 감춘다고 감춰지는 것이 아니다.”

-충당금 적립이 민영화에 도움이 될까.
“사는 사람은 누구라도 기업 가치를 보고 산다. 덩치만 키운다고 좋은 게 아니다. 물건이 팔리려면 예쁘고 좋아야 한다. 기업 가치를 제대로 높여야 민영화해서 공적자금을 충분히 회수할 수 있다.”

-실적 부진은 조직에 부담일 텐데.
“깨끗이 정리하고 더 열심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직원들에게도 부실을 있는 대로 드러내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하자고 호소했다.”
우리금융을 멍들게 한 것은 기업금융이다. 다른 시중은행들이 리스크를 줄인다며 몸을 사릴 때 기업금융을 도맡은 것이 글로벌 경제위기와 맞물려 화근이 됐다. 11월 말 현재 우리은행 원화대출 중 51%가 기업대출(38%는 중소기업대출)이다.

-기업금융이 결국 문제가 됐는데.
“당연히 안고 가야 할 부담이다. 우리가 안 하면 누가 하겠나. 기업금융은 우리은행의 소명이다. 기업을 살리면 고용 효과가 크다. 은행이 돈 벌어서 수백억원 기부하는 것보다 기업을 살리는 게 훨씬 낫다. 그것이 은행의 사회적 책무다. 부실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그에 대비해 평소 방어벽을 높이, 튼튼히 치는 수밖에 없다.”

-민영화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지금까지는 순조롭다. 계열사 CEO들에게 매각을 위해 기업 가치를 높이는 걸 최우선으로 하라고 지시했다. 시스템이든, 문화든 기업가치 제고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다 없애라고 했다.”

우리금융 민영화는 박근혜정부의 우선 정책 중 하나다. 공적자금 회수도 중요하지만 정부 품에 있던 우리금융을 시장으로 돌려보내 금융 경쟁력 향상의 계기로 만들겠다는 포석이 담겨 있다. 박근혜정부는 돈 되는 금융회사부터 쪼개 파는 ‘분리 매각’을 추진 중이다.
이에 따라 우리금융은 6일 오전 이사회를 열어 1차 매각대상인 우리금융그룹 계열사 우리F&I와 우리파이낸셜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대신증권과 KB금융그룹을 선정했다. 우리투자증권은 오는 16일 본입찰을 실시할 예정이다.

-시장에서 각광받았던 매물이었던 우리투자증권의 매력이 떨어졌다는 평가가 있다.
“매물이라고 가치가 다 같은 게 아니다. 5일장에서 팔리는 물건과 고급 백화점에서 내놓은 물건은 다르다. 좋은 물건이 날마다 나오는 게 아니다. 사실 나도 팔기 아깝다. 민영화라는 큰 그림 때문에 파는 것이다.”

-기업 가치를 높이자면 조직문화 개선이 급선무다.(금융권에서 우리금융은 ‘인사청탁’으로 이름이 높았다. 주인이 없다 보니 권력에 줄을 대려는 시도가 비일비재했다.)
“취임 후 아직 인사 청탁 받은 게 없다. 취임하자마자 ‘청탁이 들어오면 신상을 공개해 불이익을 주겠다’고 선언한 게 먹혀들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계열사 인사에 일절 간여하지 않는다. 계열사가 잘못하면 사장에게 책임을 물으면 된다. (서랍 서류를 열어 보이며) 원래 이맘때면 인사 민원서류가 꽉 차 있었다. 직원들도 줄 대지 않고 열심히 하면 된다는 걸 보고 있으니 조직 문화도 더욱 건강해질 것이다.”

이 회장은 취임 후 강도 높은 ‘군살 빼기’로 조직을 긴장시켰다. 우선 지주회사의 본부제를 폐기했다. 임원 수가 하루아침에 20명에서 5명으로 줄었다. 지주회사 직원 수는 170명에서 100명으로 줄었다. 자신도 동참했다. 우리은행장도 겸하고 있는 그는 행장실만 쓰면서 회장실은 프라이빗뱅킹(PB) 고객들을 위한 상담공간으로 바꿨다.

-지주회사 조직을 줄인 이유는.
“금융지주 역할은 계열사가 잘되도록 돕는 거다. 지주회사가 커야 할 이유가 없다. 작지만 강하고 효율적인 조직이면 된다. 대신 현장이 중심이 돼야 한다. 회장이 편하려면 주위에 사람을 많이 둬야겠지만 그게 조직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금융은 요즘 해외진출사에 전환점이 될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약 2년간 추진해온 인도네시아 소다라은행(Saudara Bank) 인수의 최종 승인이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6월 소다라은행 지분 33% 인수 계약을 체결했으나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이 자국 은행산업 보호를 이유로 승인을 내주지 않아 애를 태워왔다. 그러다 지난 10월 박근혜 대통령이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만나 협조를 부탁한 후 상황이 급진전됐다. 이 회장은 지난달 중순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승인의 최종 단계인 CEO 적격성 인터뷰를 받았다.

-소다라은행 인수가 타결되나.
“연말 전에 될 것으로 기대한다. 박 대통령 순방 이후 술술 풀렸다. 다들 나보고 운이 좋다고 한다.”

-인수 후 구상은.
“점포 수만 110여 개에 달하는 소다라은행 인수는 국내 금융 역사상 최대 규모의 M&A다. 한국 금융이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는데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본다. 앞으로 우리은행 현지법인과 합병할 예정이다.”
이 회장은 1977년 상업은행에 들어가 은행원 생활 36년 만에 2만6000여 직원을 거느리는 금융지주 회장 자리에 올랐다. 그는 이제 은행원들은 물론 CEO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롤 모델’이 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은행장이나 금융지주 회장이 될 수 있을까.
“나를 연구해 내 단점을 빼고 따라 할 수 있는 걸 하면 되지 않겠나.”

그러면서 그는 요즘 염두에 두는 말로 난득호도(難得糊塗·총명한 사람이 멍청하게 보이는 것이 매우 어렵다)를 꼽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선 손해도 보면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좀 바보스러운 사람이 필요해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