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젠스토크」의 음악과 인간 그의 내한 공연에 붙여|세계적 교향악단을 길러 낸 명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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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세계적 지휘자 「조셉·로젠스토크」씨가 오는 26일과 31일 서울 시민 회관에서 국립 교향악단을 지휘한다.
「빈」음악원에서 수학한 「로젠스토크」는 처음에는 「피아니스트」로 「데뷔」했고 1922년 이후 「다름슈타트」 「비스바덴」 「만하임」 등의 「오페라·하우스」에서 지휘자로 활약했다.
1936년부터는 일본에 와서 현 NHK 교향악단의 전신인 신 교향악단을 육성했고 제2차대 전이 끝날 무렵 미국으로 건너가 48년 이후 「뉴요크」시립 가극장의 지휘자 겸 총감독으로 활약했다. 또 61년 이후에는 「뉴요크」의 「메트러폴리턴·오페라」좌의 상임 지휘자를 역임했다.
이와 같은 화려한 경력을 가진 그는 특히 일본에서는 교향악을 본격적인 수준에 올려놓은 은인으로 존경을 받고 있으며 NHK 교향악단의 명예 지휘자로 추대되어 최근에도 여러 차례 일본에서 지휘했다.
필자도 「도오꾜」에 있을 때 그가 지휘하는 신 교향악단의 연주를 많이 들었고 또 내가 있던 송죽 교향악단에도 여러번 객원으로 와서 지휘했기 때문에 그의 음악과 인간애 접할 수 있었다.
「로젠스토크」는 현 일본 지휘계의 원로인 「사이또·히데오」(제등수웅)씨의 스승이었고 그 「사이또」씨를 통해 지금 세계적으로 활약하는 「오자와·세이지」(소정이택)를 낳게 했다. 현 국향 상임 지휘자 홍연택씨 또한 「로젠스토크」의 제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필자가 과거 10여 년간 교향악단 연주자 생활을 하는 동안 수많은 지휘자를 접해 보았으나 그중 「로젠스토크」는 가장 위대한 음악가였다. 또한 명 지휘자일뿐 아니라 「피아노」연주에도 대단한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키가 작은 편인 그는 아침 「리허설」에 나타나면 우선 지휘자 실에서 차를 마시면서 「스코어」를 보는데 열중했었다. 연습 시작종은 정각에 울리게 되어 있었고 종소리와 더불어 흑색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그는 손수 깎아 만든 짤막한 지휘봉을 들고 나타났었다.
「로젠스토크」의 두뇌는 놀라울 정도로 비장했다. 일단 지휘대 위에 올라서면 「스코어」를 보는 일이 없었고 고전에서 현대에 이르는 폭넓은 「레퍼터리」의 모든 「스코어」 들이 그의 머릿속에 완전히 정리되어 있었다.
연습 중에 「미스」가 생기면 그는 대뜸 「피아노」에 앉아 시범을 보이면서 호령이 대단했다.
또 지휘를 하면서 「클라이맥스」에 달하면 그의 얼굴은 점점 빨개지면서 안경 속으로 보이는 눈에는 눈물이 서리기도 했다. 연습 도중 그는 자기의 요구대로 되지 않을 경우 곧잘 지휘봉을 내던지고 그냥 가 버리기도 했다. 그는 연습 시간을 엄수했으며 때로는 연습 중에도 갑자기 연습을 중지시키고 잠시의 후식을 취하게 했다. 이유인즉 「멤버」가운데 누군가가 하품을 했다는 것이고 한사람이라도 피곤하면 연습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것은 보통 외국 지휘자에게서 많이 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로젠스토크」만큼 조그만 「미스」에도 무섭게 화를 내고 또 잘되면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30년이 지난 지금 필자의 머릿속에 남은 「로젠스토크」의 인상은 그는 무서운 암기력을 가진 지휘자였으며 놀라운 「피아니스트」였다는 회상이다.
이제 연륜과 더불어 더욱 원숙하여졌을 그의 음악을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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